[전운 감도는 테헤란을 가다 5信]“국제사회 제재보다는 눈앞의 물가 더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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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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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설날인 노루즈(20일)를 보름 앞둔 5일 테헤란의 ‘그랜드 바자’가 장을 보러 나선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노루즈를 맞아 식재료 값이 10% 정도 올라 시민들은 여기저기서 상인들과 가격을 흥정했다. 테헤란=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이란의 설날인 노루즈(20일)를 보름 앞둔 5일 테헤란의 ‘그랜드 바자’가 장을 보러 나선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노루즈를 맞아 식재료 값이 10% 정도 올라 시민들은 여기저기서 상인들과 가격을 흥정했다. 테헤란=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히잡은 어디서 구했어?”

테헤란 르포를 연재하기 시작하자 기자의 사진을 보고 지인들이 전화와 e메일로 많이 물어온 질문이다. 사실 기자가 둘러쓴 것은 진짜 히잡이 아니라 한국에서 가져간 스카프다. 취재비자를 받은 외신 여기자들은 무슬림이 아니라고 해도 이란 문화부에 프레스카드를 신청할 때 히잡을 착용한 사진을 제출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서 급한 마음에 우선 스카프를 쓴 채 사진을 찍었다.

이란에선 여성은 의무적으로 히잡을 착용해야 한다. 각종 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외국인 관광객도 예외는 없다. 테헤란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여성들에게 히잡을 쓰라는 기내 안내방송이 나온다.

기자는 스카프 밖으로 삐져나오는 뒷머리 때문에 시내 곳곳에 있는 종교경찰에게 끌려갈까봐 걱정하다가 결국 진짜 히잡을 구매했다. 상인은 “아가씨들에게 요즘 ‘핫’한 색”이라며 푸른색 페르시안 히잡을 추천해줬다. 하지만 5일 ‘이란의 바티칸 시티’로 불리는 콤 시를 방문했을 때 따가운 시선과 눈총을 견뎌내야만 했다. 이맘(이슬람 지도자)을 배출하는 신학교가 있는 이곳 여성들은 앞머리가 한 올도 나오지 않는 까만 차도르를 걸치고 다녔다. 동행했던 한 이란 청년은 수시로 “히잡을 똑바로 착용하라”며 주의를 줬고 “당신의 히잡은 (콤에서) 굉장히 불량한 색깔”이라고 지적했다.

‘불량한’ 히잡 때문에 종종 사건사고도 발생한다. 13일 이란 샤레코르드에서 불꽃축제인 ‘차르샨베 수리’를 구경하러 간 이란 여성 3명이 히잡이 불량스럽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체포당할 뻔했다. 주변 사람들이 이를 말리자 화가 난 경찰이 도로를 막고 최루탄을 쏴 2명이 다쳤다.

기자는 만나는 여성마다 ‘히잡이 불편하지 않냐’고 물었지만 현지 여성들은 “패션의 일종”이라며 특별히 거추장스럽거나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란 여성들 사이에서도 자유를 향한 바람이 조금씩 표출되고 있다. 한 시민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첫 선거 당시 남성의 복장·두발 자유와 여자들의 히잡 착용 의무화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어 젊은층의 폭넓은 지지를 얻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아 재선 때 표를 잃었다”고 귀띔했다.

신나리 기자
신나리 기자
이란 여성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것은 히잡 같은 이슬람 전통만이 아니다.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와 이스라엘의 공습위협 등 안보불안이 일상에 미치는 주름을 가장 먼저 피부로 느끼는 이들이 바로 여성들이다. 20일 시작되는 노루즈(페르시안력으로 한 해의 시작)를 앞둔 시장은 손님들의 발길로 붐볐다. 장을 보는 중년 여성들, 금은방이 밀집한 상가에서 만난 젊은 여성들은 “사실 제재보다도 노루즈가 되면 으레 물가가 10% 정도 오르는데 식재료를 양껏 못 살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채소값이 오르고 신혼 반지 금값이 뛰는 것을 걱정하는 이들에게서 문득 서울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잠시 그곳이 제재를 받는 특수한 지역이란 사실도 잊을 정도였다. 양파 가격을 흥정하던 주부 라지에 씨(46·여)는 “이란에 오기 전 생각했던 모습과는 많이 다르지 않냐”면서 “우리는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제재로 핍박받지도 않는다”며 씩 웃었다. 고난 속에서 여성들은 더욱 강해지나 보다.<끝>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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