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로 끝난 이집트 ‘미국인 재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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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소된 인권운동가 43명중 미국인 16명 전원 출석거부피고인들 잡담에 전화통화… 방청객들은 반대구호-노래

이집트 군부가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인 등 43명의 국제 민간 인권단체 운동가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재판이 소란 속에 2시간도 안 돼 중단됐다. 이들은 이집트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다 기소됐다. 이집트 검찰은 미국인 16명을 비롯한 외국인 27명과 이집트인 16명 등 43명이 프리덤하우스 등 국제단체 소속으로 일하면서 불법적으로 해외 지원금을 받아 왔다며 기소해 26일 카이로 형사법원에서 1차 공판을 열었다.

불구속 기소된 피고인은 총 43명이었지만 14명만이 ‘자진’ 출석했으며 미국인 16명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이 중 9명은 7일 기소 방침이 나오기 전 이미 이집트를 출국했고, 레이 러후드 미국 교통장관의 아들 샘 러후드 등 출국 금지된 7명은 카이로 주재 미대사관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 출석한 피고인들도 신변 보호를 위해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재판을 받을 때 사용했던 것과 같은 ‘철장 보호실’에 앉아 있었다.

재판이 시작되면서 방청객과 피고 지지자, 취재진, 변호사 등 수백 명이 재판정에 들어오는 바람에 마무드 무함마드 샤우크리 재판장은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에서 밀려날 정도였다고 AP통신이 전했다. 검찰이 “피고들은 불법 단체를 조직하고 허가받지 않은 외국 지원을 받았으며…”라고 논고를 이어가는 동안 ‘철장 보호실’에 있던 피고인들은 서로 잡담을 하거나 휴대전화 통화를 하면서 어떤 긴장감도 없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피고 지지자들은 재판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반면 일부 방청객은 피고인들이 민주화 활동을 한다면서 미국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고 반미 감정을 드러냈다.

급기야 재판장은 4월 26일 속개한다며 재판을 마쳤다. 미국은 재판을 강행하면 올해 이집트에 대한 군사 및 경제 원조 15억5000만 달러를 중단하겠다고 이집트 군부에 경고하고 있다. 따라서 재판 연기는 다음 재판 때까지 협상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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