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리쥔(王立軍) 중국 충칭(重慶) 시 부시장의 망명 시도 파문이 중국 내 사상 투쟁으로 비화하고 있다. 공산당 내 좌·우파 논쟁이 다시 촉발된 것이다. 중국 국민들은 최고 지도부의 권력 암투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며 그동안 억눌려 왔던 정치적 욕구를 분출하는 모습이다.
○ 좌·우파 사상 논쟁 격화
대만 왕(旺)보는 이번 사건이 차기 지도부를 결정하는 18차 당 대회를 앞두고 이론 투쟁을 촉발하고 있다고 10일 분석했다.
중국 좌파들의 활동무대인 ‘우유즈샹(烏有之鄕·wyzxsx.com)’에는 9일 “보시라이(薄熙來) 충칭 시 서기의 ‘충칭 모델’은 중국의 희망”이라는 등 보 서기를 지지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한 회원은 “(우파들이) 사회악과 부패를 처벌하고 사회 공동의 부를 추구해온 충칭에 구정물을 퍼붓고 있다”며 “(광둥의) 난팡(南方)계 신문들이 안하무인격으로 충칭에 공격을 가하고 있지만 자신의 신뢰도에 먹칠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난팡계 신문은 시장(市場)을 중시하는 ‘광둥(廣東) 모델’을 주창하며 보 서기와 경쟁을 벌여온 왕양(汪洋) 광둥 성 서기 측을 대변하는 언론매체들이다.
왕 서기를 지지하는 우파도 날선 공격을 퍼붓고 있다. 왕 부시장 관련 소문이 퍼진 8일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의 아들 후더화(胡德華) 씨는 진보 논조 월간지인 옌황춘추(炎黃春秋) 신년회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은 젊은이들의 염원”이라며 정치 개혁을 촉구했다. 이날 신년회에서 참석자들은 정치체제를 바꾸지 않으면 정권에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왕보가 전했다.
중국 본토 언론은 이번 사건을 전혀 보도하지 않고 있지만 이미 인터넷을 통해 사건을 접한 중국 국민들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9일 하루 동안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서 ‘왕리쥔’이라는 단어가 54만 번 검색됐다. 누리꾼들은 앞다퉈 이번 사건과 관련한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관련 내막을 파헤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왕 부시장이 보 서기의 이마에 총을 겨눴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민감한 얘기도 댓글로 올라왔다.
보통선거가 없는 중국에서 정치는 공산당 계파 간 자리 안배에 불과했다. 국민들의 정치 참여가 배제돼 있는 것이다. 국가주석의 임기(10년)조차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베이징(北京)의 정치평론 블로거 ‘마이클 안티’는 “본토에 소셜미디어가 도입된 후 가장 거대한 정치 이벤트가 터졌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은 한때 ‘보시라이’ ‘왕리쥔’ ‘미국 영사관’ 등의 단어 검색을 차단했지만 ‘보시라이’를 빼고는 모두 해제했다.
○ 베일 벗는 사건 내막
보쉰닷컴 등 해외에 서버를 둔 인터넷사이트에는 이번 사건의 내막을 가늠할 정황들이 올라오고 있다. 왕 부시장은 2007년 말 충칭 시 공안국장을 맡아 보 서기의 지휘 아래 전임 충칭 시 서기였던 허궈창(賀國强)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당 서열 8위)과 왕양 서기의 심복들을 쳐냈다. 허 위원은 현재 관리들의 부패 혐의를 조사하는 중앙기율검사위원회도 맡고 있다.
반격 기회를 엿보던 이들은 왕 부시장이 2000년대 초 랴오닝(遼寧) 성 톄링(鐵嶺) 공안국장으로 있을 때의 비리 혐의를 확보하고 조사에 착수했다. 왕 부시장은 보 서기가 방패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오히려 버림받을 처지에 놓이자 보 서기의 개인 비리 자료까지 몽땅 싸들고 망명을 시도했다는 설이 돌고 있다.
中 누리꾼이 올린 ‘충칭시의 장갑차 ’ 8일 중국 누리꾼이 인터넷에 올린 충칭 시의 장갑차 행렬. 왕리쥔 부시장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장갑차까지 출동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사진 출처 웨이보인터넷에는 청두(成都)의 미국총영사관에 있는 왕 부시장을 검거하기 위해 경찰 장갑차까지 출동했다는 주장과 함께 관련 사진이 올라오는 등 당시의 긴박한 상황이 소개됐다. 그가 불과 이달 초까지 충칭의 공안국장이었던 만큼 추종자들과의 유혈 충돌도 염려됐다는 것이다.
파장이 확산되면서 보 서기 사임설도 나오고 있다. 홍콩 핀궈(빈果)일보는 그가 출국 금지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대만 롄허(聯合)보는 왕 부시장을 쳐내는 선에서 사건이 마무리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권력 교체를 앞둔 예민한 상황인 만큼 서둘러 사건을 덮는 게 당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편 중국 외교부 대변인실은 9일 왕 부시장이 6일 미국총영사관에 들어가 하루 동안 머물렀다고 밝혔다. 당초에는 4시간가량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왕 부시장이 갖고 있던 기밀서류가 이미 미국 측으로 넘어간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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