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해바라기’ 원전에 지친 日 달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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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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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심어 방사능 정화” 주민-기업 큰 호응
“믿음 하나로 일 척척 진행… 정부는 왜 못하나”

《 “하루빨리 예전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소망을 해바라기에 간절히 빌어봅니다.“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사고의 직격탄을 맞은 후쿠시마 현. 곳곳에서 5월 말부터 전에 없던 해바라기 밭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방사능에 오염된 토지를 정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해바라기 심기 운동이 지역 전체로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후쿠시마 지역 언론은 최근 “승려의 솔선수범으로 폐허의 도시에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며 스님과 시민단체의 활동을 전했다. 》
일본 후쿠시마 현 조엔지의 아베 고유 주지 스님과 지역 주민이 설립한 ‘꽃에게 소망을’이라는 시민단체가 방사능 오염 토지에 해바라기를 심고 있다. ‘꽃에게 소망을’ 홈페이지
일본 후쿠시마 현 조엔지의 아베 고유 주지 스님과 지역 주민이 설립한 ‘꽃에게 소망을’이라는 시민단체가 방사능 오염 토지에 해바라기를 심고 있다. ‘꽃에게 소망을’ 홈페이지
해바라기 심기를 추진하고 있는 이는 후쿠시마 현 조엔지(常圓寺)의 아베 고유(阿部光裕·47·사진) 주지 스님. 그는 원전 사고로 실의에 빠진 주민들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까 고민하다 5월 말 ‘꽃에게 소망을’이라는 시민단체를 조직했다.

해바라기가 방사능을 정화하는 데 효과가 있는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지만 일단 주민 스스로 해볼 수 있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에서다. 1986년 옛 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 때도 해바라기를 이용해 방사성물질을 줄였다는 사례도 있다.

아베 스님의 해바라기 심기는 조엔지에서 시작됐다. 사찰 안에 20만 개의 해바라기 씨앗을 뿌려 모종을 우선 키우고 이 모종을 후쿠시마 지역민에게 나눠주는 것. 후쿠시마 곳곳에 심어져 있는 800만 포기의 해바라기는 이곳에서 옮겨간 것이다. 모종이 부족해지자 아베 스님과 시민단체는 재배법 등을 설명서로 만들어 씨앗과 함께 나눠주고 있다. 올해 안에 2000만 포기를 심는 게 목표다.

아베 스님은 방사능에 오염된 흙도 받고 있다. 지역민들이 오염토지의 겉흙을 긁어내 부대에 담아오면 사찰 소유 토지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벌써 수백 개의 부대가 모였다. 이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방사선량은 시간당 8μSv(마이크로시버트). 연간 법적허용치인 시간당 3.8μSv를 두 배 이상 웃도는 수치다.

스님의 솔선수범에 감동했기 때문일까. 사찰 주변 주민들도 함께했다. 주민 100여 명은 손수레를 끌고 나와 자원봉사에 나섰고 현지 기업들로부터도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아베 스님은 “조그만 절의 주지밖에 안 되지만 (이웃과의) 신뢰관계가 쌓이면 이렇게 좋은 일들이 생기는데…”라며 “하물며 정부 대책에 좀처럼 진척이 없는 것은 국민과의 신뢰가 망가졌다는 증거”라고 아쉬워했다.

“초등학교 5학년 이른 나이에 출가한 후 승려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고뇌와 망설임이 끊이지 않고 따라다녔다.” 아베 스님은 조엔지의 홈페이지에 이렇게 썼다. 하지만 이제 그 답을 찾은 것 같다고 했다. “승려의 길은 생로병사를 살아가는 속세인의 인생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성실하게 살아가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후쿠시마 주민들은 해바라기에서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고 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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