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침략의 상징 ‘히노마루-기미가요’… 과거사 반성없인 국기-국가 될 수 없다”

동아일보 입력 2011-06-15 03:00수정 2011-06-15 15:13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기립제창 명령’ 위헌소송… 전직 교사 사루야 유지씨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일본 국기(國旗)와 국가(國歌)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일본인 전직 교사가 있다. 도쿄도립 미나미가쓰시카(南葛飾) 야간고등학교에서 30여 년간 사회 과목을 가르쳐온 사루야 유지(申谷雄二·64)씨. 그는 1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과거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 없이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는 일본의 국기와 국가가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는 2004년 3월 졸업식에서 국기를 향해 기립해 국가를 제창하라는 학교장의 지시를 거부해 경고처분을 받았고 이 때문에 2007년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해 정년퇴직했다. 사루야 씨는 "학교장의 기립제창 명령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일부 승소했지만 2심과 지난달 30일 열린 상고심에서 내리 패소했다.

일본에서는 공립학교에서의 기립제창 의무를 거부해 징계처분을 받은 교사가 지난해까지 1143명에 이른다. 이들은 '부당처분 철회를 요구하는 모임'을 만들어 현재 개별적인 소송을 진행 중이지만 이번 판결이 앞으로의 소송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가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거부하는 이유를 들어봤다.

주요기사

―히노마루와 기미가요가 일본의 국기와 국가라는 건 일본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국기와 국가로 인정할 수 없는 이유를 말하기 전에 우선 말하고 싶은 게 있다. 내가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부정한다고 해서 나를 반골성향의 반(反)사회주의자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지극히 평범하고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시골의 촌장을 지냈고 자민당을 지지하는 누구보다도 보수적 성향의 집안이다. 하지만 내가 대학에 진학한 이후 여태까지 몰랐던 일본의 어두운 역사를 배웠다. 일본제국주의는 조선과 중국을 비롯한 이웃나라를 침략해 학살과 약탈 등 나쁜 일을 수도 없이 저질렀다는 것을 알게 됐다.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는 바로 일본제국주의 침략사를 대표하는 상징물이었다. 그런 부의 유산을 일본의 국기와 국가로 인정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독일에서 전쟁 때 학살의 상징이었던 나치 깃발을 국기로 쓰고 있나. 독일은 철저하게 반성했다. 일본이 잘못된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미화하고 당시 시대적 상황논리로 합리화하려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공립학교 교사로서의 책임도 있지 않나?

"1972년 고등학교 교사가 된 이후 재일교포 등 일본 사회의 마이너리티(소수자)의 생활을 지켜봐왔다. 내가 몸담았던 학교는 정시제 학교(야간학교)여서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일반 인문계 고교에서 쫓겨난 학생이 학생이 많았다. 그 가운데는 재일한국인 출신 학생들도 있었다. 그런데 재일한국인 제자들의 불행한 삶은 일종의 대물림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사회의 주변적 위치에 머물면서 차별적인 환경에서 자란 학생들은 사회의 중심부로 들어가지 못하고 졸업 후에도 주류사회의 주변을 겉돌았다. 그리고 그런 불행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부의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그런 악순환을 깨는 게 교육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침략전쟁의 역사를 알고 있는 재일한국인과 재일중국인 제자들에게 침략의 상징이었던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강제하는 것은 교사의 양심 상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럼 일본의 국가와 국기는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가?

"히노마루와 기미가요가 진정한 일본의 국기와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일본의 충분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를 있었던 그대로 바로 가르쳐야 한다.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확신을 이웃 나라에 줘야하고, 이를 한국 중국을 비롯해 침략 피해자들이 모두 인정한 이후여야 한다. 가해자인 일본은 침략과 차별에 대해 잘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충분한 반성이 안나온다. 그게 안 된다면 국기와 국가는 새로운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사루야 씨는 "히노마루를 사랑하는 것이 국가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극우익 세력의 단견에 지나지 않는다"고도 했다.

"히노마루 앞에 기립하지 않고 기미가요를 제창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일본을 사랑하지 않는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나는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 도지사보다도 이 나라를 사랑하고 있다고 자부한다.(이시하라 도쿄도지사는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보수 정치인으로 2003년 8월 도쿄도 교육위원회가 공립학교의 졸업식 등 공식행사에서 기립제창을 의무화하도록 지시한 인물이다) 누구보다 일본을 사랑하는 국민으로서 일본의 미래를 위하는 길은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가르치고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내 생각이 반드시 재일한국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진정 일본을 위하는 길이다."

"일본의 보수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일본도 패전 직후 일본의 과거를 철저하게 반성했던 시절이 있었다. 절대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헌법 9조도 이런 반성의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터지고 미군정이 끝나면서 일본사회의 반성의 분위기는 일거에 사라졌다. 갑자기 전쟁책임을 애매하게 흐리고, 침략사를 긍정적으로 보고, 부의 역사를 합리화하는 분위기로 급변했다. 1999년 일본 정부가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국기와 국가로 법률로 제정한 것도 이 같은 보수화의 일환이다."

일본은 1945년 패전 후 미군정의 통치를 받으면서 전쟁범죄의 상징이라는 이유로 히노마루와 기미가요의 공식적인 게양과 제창이 금지됐다. 미군정이 끝나면서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는 자연스럽게 복권되기는 했지만 공식적인 국기와 국가로 인정된 것은 1999년 히노마루 기미가요 법이 제정된 이후부터다.

상고심 판결이 났을 때의 심경을 묻자 사루야 씨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았다. 보름이 넘었지만 아직도 분이 삭여지지 않은 듯 했다.

"2009년 1심 소송에서부터 참으로 기나긴 법정 싸움이었다. 그동안 많은 졸업생과 학부모, 동료들이 응원과 격려를 해줬다. 나로서는 분수에 넘치는 주목을 받은 시간이기도 했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고 이처럼 많은 신세를 지고도 패소해 죄송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자리를 일어서려 하자 사루야 씨는 "한국 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일본에도 잘못된 과거사를 반성하는 일본인이 적지 않다는 것을 한국 국민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일본과 한국이 더 친밀한 이웃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이타마=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