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요! 저요!” 교사가 앞으로 나와 문제를 풀어보라고 하자 학생들은 서로 풀겠다고 손을 들었다. 칠판이 유일한 학교 시설이지만 수업에 열중하는 학구열은 햇볕보다 뜨겁다.
남수단공화국(남수단)의 수도 주바에서 북쪽으로 비포장도로를 따라 3시간을 달리면 파리아크란 곳에 도착한다. 현대적 건물은 하나도 없는 마을. 흙으로 지은 전통 가옥 200여 채뿐이다.
기자가 현지인과 함께 찾아간 5월 24일. 마을 어린이들은 오전 7시가 되자 유니세프(UNICEF) 로고가 새겨진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학교에 가는 길이었다. 몇몇은 가방 대신 비닐봉지에 책과 공책을 담았다.
어린이들과 함께 20여 분을 걸어 학교에 도착했다. 운동장에 다른 어린이 10여 명이 보였다. 아침에도 섭씨 40도가 넘는 땡볕 아래서 공을 차고 있었다. ○ 남수단의 희망을 키운다
맨발 축구 남수단 수도 주바에서 북으로 200km 정도 떨어진 마을 파리아크의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맨발로 공을 차고 있다.커다란 나무에 매달린 칠판이 이 학교 시설의 전부다. 예닐곱 살쯤 된 어린이 30여 명이 칠판 앞 흙바닥에 앉아 산수를 배웠다.
교장 겸 교사인 존 아코이 말루크 씨(34)는 영어로 수업을 진행했다. 칠판에 ‘6÷3=’이라고 쓴 뒤 “누가 해볼까”라고 묻자 아이들은 야윈 팔을 높이 쳐들었다. 수업 분위기가 산만해지려 하면 말루크 씨는 “여러분, 우리는 뭘 하고 있나요”라고 물었다. 아이들은 “우린 앉아 있어요”라며 다시 칠판으로 눈을 돌렸다. 영어로 가사를 바꾼 부족 민요를 부르기도 했다.
말루크 씨는 기자를 또 다른 나무그늘로 안내했다. 교사 대기 공간이니 교무실인 셈. 그는 “모든 게 부족하지만 가장 필요한 건 교사”라고 말했다. 이 학교는 몇 km 떨어진 다른 마을에서 찾아오는 경우를 포함하면 등록된 학생이 885명에 이른다. 교사는 말루크 씨를 포함해 6명뿐.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기초학교지만 학생의 나이는 5∼25세로 다양하다. 영어 수학 사회 지리 농업 체육을 가르치지만 교사 수가 적어서 학생이 못 배우는 과목도 많다.
말루크 씨는 11년째 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정부에서 받는 월급은 수단파운드로 230파운드(약 8만5000원). 어린 군인의 월급보다 적지 않으냐고 묻자 그는 말했다. “적은 돈이지만 나는 이 나라의 희망을 만들고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일입니다.”
남수단 독립이 결정된 이후 변화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운동장 한쪽을 가리켰다. “정부에서 지원금을 줘서 교실을 짓고 있습니다. 비가 와도 공부할 수 있어요.” 거기에는 시멘트 벽돌이 쌓여 있었다. 파리아크 마을 최초의 시멘트 건물은 학교 교실이 될 예정이다. ○ 현대화 작업 한창
오늘은 힘들지만… 남수단 어린이들이 옥수수를 자루에 넣어 5km 정도 떨어진 시장에 팔러 가고 있다. 이들처럼 학교에 갈 시간이지만 일하는 아이도 많다(왼쪽 사진). 전날 밤 내린 비로 물이 가득 고인 길가 웅덩이에서 어린이들이 흙탕물을 긷고 있다. 마을에는 전기, 수도시설은 물론이고 우물조차 없다. 주바=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독립이 다가오면서 희망 역시 커졌지만 현실은 아직 어수선하다. 아니 불안하다. 남북 수단 경계의 유전지역을 둘러싼 영토 분쟁이 대표적이다.
북수단은 5월 21일 유전지역 아비에이를 무력 점거한 뒤 국제사회의 철군 요청을 거절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북 수단이 30일 고위급 협상을 처음으로 열었지만 북수단은 “계속 군을 주둔시키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남수단은 변화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수도 주바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공사판이다. 3, 4층짜리 주택이 시내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다른 국가도 앞다퉈 큰 공사를 진행한다. 남수단의 풍부한 자원에 관심이 많은 선진국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중국이 가장 적극적이다. 7월 9일 독립 기념식이 열릴 광장은 물론이고 이 나라에서 유일한 종합운동장을 중국이 지어주고 있다. 도로나 다리 등 기반시설 공사에도 중국이 손을 뻗치고 있다.
일본은 국제협력기구(JICA)를 통해 투자 규모를 2007년 3억9000만 엔에서 2011년 150억 엔으로 늘리기로 했다. 주도의 수도 시설, 정부 건물, 쓰레기 처리시설을 비롯해 식량 생산까지 지원한다는 목표다. 하지만 아직 한국은 남수단에서 착수한 사업이 없다. ○ 조국 위해 돌아온 망명자들
내전이 50여 년간 이어지면서 수백만 명의 난민이 생겼다. 이웃나라로 피하거나 유엔의 도움을 받아 먼 나라로 떠난 사례도 적지 않다.
남수단 최대 부족인 딘카족 출신의 찬 다우 씨(26)도 10년 전 전쟁터가 된 고향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했다. 사촌 형제와 미국으로 간 그는 16세부터 미국 애리조나 주에 정착해 일을 하면서 공부했다. 그는 센트럴 애리조나대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뒤 올 초 조국으로 돌아왔다.
다우 씨는 “미국 시민권자라서 얼마든지 거기서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보다는 남수단이 나를 더 필요로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처럼 외국에서 공부한 망명자의 상당수가 고향 땅으로 계속 돌아오고 있다. 이곳에서는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거의 없어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남수단 일각에서는 돌아온 망명자를 ‘전쟁 중에 나라를 떠난 비겁자’로 보는 시선도 없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들이 나라 발전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데 동의하는 분위기다.
다우 씨는 남수단 진출을 계획하는 외국 회사에 남수단을 소개하는 일을 한다. 그는 거리에서 1파운드에 구두를 닦아주는 다섯 살배기 어린아이에게 구두를 맡기고 5파운드를 주며 기자에게 말했다. “이 아이가 교육을 받고 잘살게 되는 날이 곧 올 겁니다.” ▼ “남수단 가능성 무궁… 한국도 원조사업 빨리 시작해야” ▼ 현지서 5년쨰 사업 김기춘 씨
남수단 주민에게 한국은 낯선 나라다. 하지만 주바에서 5년째 사는 한국인 김기춘 씨(60·사진)는 이곳에서 유명 인사다.
남수단 정부의 장관이나 국장급 인사가 “미스터 김은 내 친구”라고 말할 정도다. 그는 남수단 최초의 경제 전문지인 ‘남수단 비즈니스 리뷰’ 창간을 준비하고 있어 현지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남수단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근무할 때 수단인 친구가 있었다. 그가 수단에서 사업을 해보자고 해 1995년 한국차를 수출하는 회사를 차렸다. 10년 정도 운영하다가 큰 기업에 회사를 넘기고 평화협정을 갓 체결한 남수단에 왔다.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남수단의 첫인상은 어땠나.
“막막했다. 장사를 할 곳이 아니라 정말 도움이 필요한 곳이었다. 여기 머물면서 여러 사람을 만났고 남수단에 진출하려는 외국 기업의 자문 역할을 하게 됐다. 아무것도 없는 나라지만 그만큼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외국도 많은 관심을 보이는데….
“중국 일본은 물론이고 인도나 말레이시아 등 우리나라보다 경제 수준이 낮은 국가도 원조 사업을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공무원이 방문했지만 본격적인 사업은 없는 편이다. 여기는 아직도 분쟁 지역으로 봐야 한다. 좋은 관계를 위해서는 빠른 원조가 필요하다.”
―어떤 원조가 특히 필요한가.
“주택 공사가 최대 관심사다. 한국은 전쟁 이후 주택 보급을 해본 경험이 있지 않은가. 토지 정비 사업권부터 얻어내면 이후 건설 사업권도 쉽게 얻을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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