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젊은 아내와 머물렀던 ‘빈 라덴의 은신처’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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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3일 01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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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생포 아닌 사살” 40분만에 작전 완료


모두가 잠든 2일 오전 1시 반경(파키스탄 현지 시간·한국 시간 2일 오전 5시 반). 미국 해군 특수부대인 네이비실 요원 20여 명을 태운 헬기 4대가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의 한 고급 저택을 기습했다.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의 목줄을 겨냥한 작전(targeted operation·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표현)이 시작된 것이다. 2001년 9·11테러 이후 10년간 미국의 끈질긴 추적을 뿌리쳐온 빈라덴은 작전 개시 40여 분 만에 싸늘한 시신으로 변했다. 다급해진 빈라덴은 사살되기 직전 직접 총을 들고 사격을 했다고 미 행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빈라덴의 은신처는 파키스탄 수도인 이슬라마바드에서 북쪽으로 100km 정도 떨어진 아보타바드의 외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은 고급 저택들이 즐비한 부자동네로 빈라덴이 살았던 3층짜리 단독 저택은 100만 달러(약 10억 원)에 이른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접경지역의 동굴 속에 숨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대담하게 도심의 부자동네에 숨어 지내온 것이다. 파키스탄 군사학교에서 1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다. 인근에 군기지가 있어 장교와 사병 등이 대거 거주하고 있다. ‘적들의 한복판’에 터를 잡은 채 태연하게 은거했던 셈이다. 특히 빈라덴이 머물렀던 대저택은 이웃집들보다 8배나 더 커 눈에 띄었으나 아무도 이곳에 빈라덴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작전은 과감했다. 헬기 1대가 저택 옥상 위에 착륙하자마자 네이비실 요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파키스탄 북부의 공군기지에서 출격한 다른 헬기 3대도 작전을 지원했다. 빈라덴의 경호원들은 헬기를 향해 소총과 유탄발사기 등을 쏘며 격렬하게 저항했고 저택에선 불길이 치솟았다. 알카에다 측은 여성 1명을 인간방패로 내세우기까지 했다. 미군 헬기 1대가 작전 도중 떨어졌으나 미군 측은 격추된 게 아니라 기계적 결함 때문에 불시착해 자체 폭파시킨 것이라고 해명했다. 미군 사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40여 분간의 치열한 교전으로 빈라덴과 그의 아들, 연락책을 맡은 형제 2명을 포함해 모두 5명이 숨졌다. 빈라덴은 머리에 총격을 받고 숨졌다. 빈라덴의 자녀 6명과 부인 2명, 측근 4명은 생포됐다. 네이비실 요원들은 빈라덴의 시신을 헬기에 싣고 서둘러 현장을 빠져나왔다. 시신은 이후 여러 차례의 유전자(DNA) 검사를 통해 빈라덴이 틀림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미 정부 관계자는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작전 명령을 승인한 뒤에도 작전 개시 때까지 파키스탄 정부에 이를 비밀로 했다. 미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파키스탄을 포함해 어떤 국가와도 작전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 지난해 8월 결정적 단서 포착

미 중앙정보국(CIA)이 10년 전 아프가니스탄 서북부 산악지대에서 자취를 감춘 빈라덴의 흔적을 다시 발견한 것은 4년 전인 2007년경. 쿠바 관타나모 기지에 수감된 테러 용의자의 입에서 빈라덴의 절대적 신뢰를 받으면서 그의 메시지를 외부로 전달하는 핵심 연락책의 가명이 튀어나왔다. 이 테러 용의자는 문제의 연락책이 9·11테러 계획 주도자로 관타나모에 수감 중인 칼리드 샤이크 무함마드의 부하라고도 털어놓았다. CIA는 무함마드에 대한 심문 등 집요한 추적을 이어가면서 문제의 연락책이 파키스탄에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후 수사는 그의 소재 파악에 집중됐다. 그가 자주 가는 파키스탄 내 방문지들을 추적하면서 행적을 파악하는 데만 2년이 걸렸다.

지난해 8월 드디어 CIA는 이 핵심 연락책이 또 다른 연락책인 자신의 형과 함께 아보타바드의 한 저택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오바마 대통령에게도 이 같은 정보가 즉각 보고됐다. 미 행정부 당국자는 “3월부터 총 다섯 차례 대통령 주재 국가안보팀 회의가 이어졌다”고 말했다.

CIA는 저택에 대한 집중 감시에 들어갔고 여러 의문점들이 쏟아졌다. 2005년에 건립된 이 저택은 담장 높이가 최고 18피트(약 5.5m)에 이르고 담장 위에는 철조망들이 깔려 있었다. 인근의 다른 집들보다 8배가량 큰 3층짜리 건물이지만 또다시 7피트(약 2.1m) 높이의 내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창문도 높게 설치돼 내부를 들여다보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더 이상한 점은 전화와 인터넷을 이용하지 않으며, 쓰레기도 밖으로 배출하지 않고 소각해 처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미 정보 당국자는 “이 저택의 물리적인 보안은 철통과도 같았다”고 말했다. 변변한 수입도 없는 젊은이들이 비싼 저택에 살고 있는 점도 이상했다.

결국 저택에 중요한 인물이 숨어있다고 판단한 CIA는 연락책들 외에 여러 정황을 통해 마침내 빈라덴과 그의 젊은 아내가 살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별도로 시중드는 사람들이 계속 집 밖을 오가며 빈라덴에게 필요한 물품을 구해다 줬다”며 “CIA는 빈라덴에게 ‘엘비스(Elvis)’라는 닉네임을 붙였다”고 보도했다. 마침내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헬기 공격을 승인했고 CIA와 미군 특수부대는 월요일인 2일 새벽(파키스탄 현지 시간)을 틈타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미국은 처음에는 무인폭격기로 집을 공격할 것을 검토했으나 이웃 주민들이 다칠 것을 우려해 헬기를 동원해 특수부대원들이 공격하는 방법을 택했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미 행정부 관계자는 “이번 작전은 빈라덴을 생포하려는 게 아니라 사살하도록 계획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사망한 빈라덴의 사진을 공개할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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