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토네이도로 초토화 → 풍력발전으로 우뚝… 그린즈버그市의 ‘그린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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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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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맞고 무너졌다… 바람타고 일어서다재활용 벽돌로 지은 시청… 태양광 전지 갖춘 집… 지열 활용 냉난방… LED 가로등

2007년 5월 강력한 토네이도로 완전히 초토화된 미국 캔자스 주 그린즈버그 시내 모습. 인구 1000여 명의 이 소도시는 마치 사람이 살았던 흔적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폐허가 됐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2007년 5월 강력한 토네이도로 완전히 초토화된 미국 캔자스 주 그린즈버그 시내 모습. 인구 1000여 명의 이 소도시는 마치 사람이 살았던 흔적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폐허가 됐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나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희망은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서 온다는 걸 배웠다. 토네이도로 완전히 폐허가 됐다가 클린에너지 활용의 모범사례로 재탄생한 캔자스 주의 그린즈버그 시를 생각해 보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작년 2월 24일 취임 후 첫 상하 양원 합동연설에서 한 이 말을 계기로 미국 지역신문에서 이따금 다뤄지던 그린즈버그의 ‘그린 혁명’은 미국은 물론 세계 각국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풍력발전으로 100% 전기를 공급받는 도시, 재활용 벽돌로 지은 시청 건물, 지열을 활용한 냉난방 시설을 갖춘 공공건물, 태양광 전지를 갖춘 가정집, 에너지를 40% 절감한 발광다이오드(LED) 가로등….

토네이도로 초토화됐던 미국 중부의 작은 전원도시가 3년여 만에 어떻게 전 세계에서 매년 수만 명이 클린에너지 활용을 벤치마킹하러 오는 곳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을까.

○ 도시 전체를 휩쓸어간 ‘바람’

9일(현지 시간) 미국의 정중앙에 위치한 주 캔자스의 서남부에 위치한 인구 1000여 명의 작은 도시 그린즈버그. 넓은 평야에 밀밭과 옥수수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속의 도시다.

탁 트인 지형적 특성으로 평소 바람이 강하게 부는 데다 로키산맥의 차가운 공기와 멕시코 만의 따뜻한 공기가 만나 토네이도가 잦은 지역이다. 주민들은 농작물 피해나 가옥 파손 등에는 익숙했지만 2007년 5월 4일 오후 9시 15분에 발생한 초대형 토네이도는 달랐다. 시속 320km의 강풍을 동반한 거대한 구름 기둥이 도시 전체를 덮쳤다. 구름 기둥의 너비만 3km에 이르렀다. 일반 가정집은 물론이고 시청 법원 등 공공시설과 상점이 쓰러져 내렸고 주차돼 있던 자동차들이 지붕 위로 곤두박질쳤다. 토네이도가 머물던 12분 만에 도시의 95%가 파괴됐다. 평화롭던 전원도시는 순식간에 폐허로 변했다. 주민 11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다쳤다. 그나마 토네이도 발생 20분 전에 경보가 발령된 덕분에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 ‘그린 혁명’의 바람이 불다

집을 잃은 주민들은 도시 외곽에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설치한 300여 개의 트레일러에서 생활했다. 충격에서 다소 벗어난 주민들은 머리를 맞대고 도시 재건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당시 주민들 스스로 구성한 시민단체인 ‘그린즈버그 그린타운’의 루스 웨들 사무국장은 “정부 지원금과 보험금을 받은 일부 주민들이 인근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지자 주민들은 ‘이렇게 삶의 터전을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더 나은 도시를 만들어 보자며 힘을 모았다”고 말했다.

‘지속적으로 경제가 성장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동시에 젊은이들도 살고 싶어 하는 도시를 만든다’는 목표 아래 나온 결론이 ‘클린에너지 도시’였다. 사계절 부는 강한 바람과 강렬한 태양, 지열 등을 활용해 에너지를 100% 자족하는 도시를 만들기로 했다. 이런 야심 찬 목표는 3년 만에 현실이 됐다.

그린즈버그 외곽에는 56m 높이의 1.25MW짜리 풍력발전기 10개가 세워졌다. 이 지역의 농기계를 판매하는 업체인 BTI가 구성한 컨소시엄과 그린즈버그 시가 주도해 건설한 것이다. 발전기 1개가 그린즈버그의 400가구에 전기를 공급한다. 나머지 9개가 생산하는 전기는 인근 지역에 판매하고 있다.

병원 학교 아트센터 등 공공건물은 물론 상점과 중소기업들은 대부분 자체 풍력발전기를 갖고 있다. 2008년 5월 개관한 5.4.7아트센터(토네이도가 발생한 2007년 5월 4일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600W짜리 풍력발전기 3개와 함께 옥상에는 태양광 전지를, 지하에는 지열을 활용한 냉난방 설비를 갖추고 있어 필요한 에너지를 100% 자체 생산한다. 12개의 배터리도 있어 남는 전기를 모아두었다가 필요할 때 쓴다. 스테이시 반즈 아트센터 관장은 “그린즈버그 시와 계약을 맺어 배터리를 충전하고도 남는 전기는 시에 보내고 발전량이 부족할 때 그만큼 끌어다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0년 그린즈버그 메모리얼 병원의 모습. 주민들은 폐허가 됐던 도시를 불과 3년 만에 클린에너지 활용 모범사례로 전 세계에서 벤치마킹하러 오는 도시로 변모시켰다. 그린즈버그=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2010년 그린즈버그 메모리얼 병원의 모습. 주민들은 폐허가 됐던 도시를 불과 3년 만에 클린에너지 활용 모범사례로 전 세계에서 벤치마킹하러 오는 도시로 변모시켰다. 그린즈버그=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에너지 절약이나 재활용을 위한 갖가지 아이디어도 동원됐다. 시내에 위치한 존 디어 농기계 대리점은 정화시설을 갖춘 연못에 빗물과 생활용수를 모은 뒤 이를 정원수로 활용해 물 사용량을 절반으로 줄였다. 시청 건물의 외벽은 기존 건물에서 수거한 벽돌을 재활용해 세웠다. 또 거리에는 미국 도시 가운데 처음으로 LED 가로등을 설치해 전기 사용량을 40% 감축했다.

그린즈버그의 ‘그린 혁명’은 주민들에게 전기료 절감 등의 혜택을 가져다줬다. 일반 가정집의 전기료는 평균 40% 정도 줄었다. 카운티메모리얼병원의 연간 에너지비용은 36만 달러에서 24만 달러로, 시립 창업지원센터 건물은 2만3000달러에서 1만1000달러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밥 딕슨 시장은 “그린즈버그의 ‘그린 혁명’이 알려지면서 지난해 국내외에서 5만여 명이 이곳을 다녀갔다”며 “그린즈버그를 브랜드로 활용하고 싶다는 기업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그는 “현재 도시 재건 계획이 50∼60% 정도 완료된 상태”라며 “프로그램이 마무리되면 전 세계 각국이 우리의 성공과 실패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살아있는 실험실’의 역할을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린즈버그=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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