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루스코니 伊총리 피습 ‘얼굴 피범벅’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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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연설후 조각상에 맞아
정신질환 용의자 현장서 체포

성추문과 부패 혐의, 마피아 연루설 등 각종 스캔들에 시달리고 있는 이탈리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13일 시민에게 얻어맞아 피를 흘리는 봉변을 당했다고 AFP통신이 14일 전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13일 오후 6시 반경 밀라노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연설한 뒤 한 남성이 던진 두오모 성당 모형 조각상에 얼굴을 맞고 쓰러졌다. 입술과 코, 눈 아랫부분이 피범벅이 된 채 보좌관들의 부축을 받고 승용차에 올라 급히 병원으로 옮겨지는 모습이 국영TV를 통해 고스란히 방영됐다.

이날 자유국민당 소속 지지자 수천 명 앞에서 “좌파들은 내가 괴물이라고 하지만 나는 착한 사람”이라고 목청을 높이던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연설을 마친 뒤 지지자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사인까지 해주다가 변을 당했다. 그는 이송 중에도 “괜찮다, 괜찮다”며 “눈을 다치지 않은 것만도 기적”이라고 말하는 등 여유를 보였다. 경찰은 현장에서 마시모 타르타글리아 씨(42)를 용의자로 긴급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용의자는 범죄 전력은 없지만 10년간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코에 경미한 골절상을 입었고 치아가 2개 부러진 그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처치와 검사를 받은 뒤 의사의 권유로 병원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주치의는 14일 “별도의 수술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15일까지는 입원해야 하고, 회복되기까지는 3주 정도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이날 오전 병원에서 피범벅이 된 자신의 모습이 1면에 실린 신문들을 구해서 읽었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이번 사건을 통해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물리적인 상처보다 정신적 상처가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잇따른 섹스 스캔들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그는 천문학적 규모의 위자료가 걸린 이혼소송과 탈세, 회계부정, 부패 혐의에 대한 재판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마피아 연루설까지 나왔다. 5일 로마에서 35만 명이 그의 사임을 요구하는 등 연일 시위가 계속되면서 최악의 정치적 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탈리아 정치권은 일제히 폭력 행위를 비난하고 나섰다. 조르조 나폴리타노 대통령은 “모든 충동과 폭력의 악순환을 예방하고 막아 달라”고 당부했다. 따라서 이번 일로 동정론이 일면서 베를루스코니 총리에게는 오히려 호재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그가 입원한 병원 정문 앞에는 지지자가 쓴 것으로 보이는 “진짜 이탈리아인들은 당신과 함께할 것”이라는 현수막이 붙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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