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들 삶 더 추락… 오바마 어찌된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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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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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인인재 산실 美 워싱턴 하워드大 집회 등 가보니

“실업률 되레 늘고 흑인상대 범죄 여전… 변화는 없었다”

지난달 백악관 앞에서 흑인들의 모임인 ‘블랙 이스 백 연대’가 오바마 대통령이 흑인사회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 제공 블랙 이스 백 연대
지난달 백악관 앞에서 흑인들의 모임인 ‘블랙 이스 백 연대’가 오바마 대통령이 흑인사회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 제공 블랙 이스 백 연대
11일 오후 8시 반(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하워드대 캠퍼스 주변. 식료품점이 문을 닫은 뒤 빈 공간이 된 15평 정도 되는 건물에 흑인들이 한두 명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주제나 형식에 제한이 없고 시를 읊건 랩을 하건 연설을 하건 아무런 제한이 없어 ‘오픈마이크’라고 붙여진 행사로 매주 열린다.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2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행사는 문자 그대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 성토장이었다.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해럴드 헌터 씨(39)는 “단정적으로 오바마 대통령 탓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참 살기 어려워졌다”며 “그중에서도 흑인들의 삶은 지난 1년 동안 급전직하했다”고 말했다. 흑인 인재의 산실로 1867년 설립된 하워드대 법대를 졸업한 에런 오닐 씨(32)는 “흑인 실업률의 증가에는 분명 인종적 편견과 백인우월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며 “오바마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던 변화를 느낄 수 없다”고 말했다.

한때 조선, 제철, 화학, 정유 등 제조업의 중심지였지만 이제는 쇠락해 버린 볼티모어에서 만난 흑인들 중에도 좌절감을 표현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존스홉킨스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원생인 치오마 오루 씨(27)는 “오바마 대통령은 겉은 흑인이지만 속은 백인”이라며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압도적 지지를 보여줬던 흑인들에게 실망감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을 보는 흑인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지난해 대선에서 95%의 지지를 보였던 때와는 사뭇 다르다. 가장 주된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 탓. 10월 말 현재 흑인 실업률은 15.7%로 9%대인 백인보다 7%포인트가량 높다. 또 24세 이하의 흑인 학부 졸업생의 실업률은 30.5%로 전국 실업률(10.2%)의 3배나 됐다. 특히 흑인을 상대로 한 인종차별적인 증오범죄도 크게 늘고 있다. 2008 연방수사국(FBI) 자료에 따르면 흑인 대상 범죄는 2007년에 비해 4% 증가했다. 반면 이 기간 전체 증오범죄율은 11% 감소했다.

흑인들 사이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이 변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흑인의 권익보다는 자신의 재선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백인들의 인기에 영합하려 한다는 지적. 11월 9일 갤럽 조사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흑인 사회의 권익 옹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을 것 같다고 응답한 흑인이 전년 대비 60%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진보 성향의 흑인 모임인 ‘블랙 이스 백(Black is Back) 연대’는 아예 지난달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벌었다. 200여 명이 모인 첫 백악관 앞 흑인 집단 시위에서 참석자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흑인 사회의 복지와 권익 신장을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물론 오바마 대통령의 고충을 이해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워드대 대학원생인 제러미 볼드윈 씨(32)는 “재선을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흑인의 지지보다는 백인의 도움이 필요한 오바마 대통령에게 흑인을 위해 노골적으로 뭔가를 해주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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