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고함 한마디의 부메랑

  • 입력 2009년 9월 12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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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의회 연설에서 건강보험 개혁이 불법 이민자에게 혜택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는 순간 공화당의 조 윌슨 하원의원이 “거짓말(You lie)”이라고 고함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9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의회 연설에서 건강보험 개혁이 불법 이민자에게 혜택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는 순간 공화당의 조 윌슨 하원의원이 “거짓말(You lie)”이라고 고함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오바마 연설중 소동 월슨 의원에 “부적절” 여론 질타
“자기 가족은 무료보험 혜택 누리면서…” 지지도 추락
지역구 경쟁상대엔 하루사이 50만 달러 후원금 쇄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의회 연설 도중 공화당 하원의원이 “거짓말”이라고 고함친 사건의 파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 문제의 장본인인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 4선인 조 윌슨 의원이 즉각 사과했지만 미 의회 역사상 유례없는 사건인 탓에 비판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공화당 지도부는 소동 직후 윌슨 의원의 행동을 단호히 질타함으로써 일단 당과 해당 의원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지만 후폭풍을 걱정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10일 “누구나 다 실수를 한다. 그의 사과는 신속했고 명료했다”며 사과를 받아들였다. 고함친 90분 뒤 사과 성명을 낸 윌슨 의원은 10일 자신의 행동이 계획된 것이었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즉석에서 입 밖으로 나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징계를 추진할 뜻이 없다고 밝혔지만 짐 클라이번 민주당 원내 부대표는 “하원 전체에 사과하지 않으면 의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결의안을 추진하겠다”고 경고했다.

윌슨 의원의 지역구 경쟁 상대인 민주당의 롭 밀러 씨에겐 소동 발생 24시간 만에 시민 5000여 명으로부터 50만 달러가 넘는 후원금이 쇄도했다. 밀러 씨가 상반기에 모금한 후원금은 총 4만8000달러에 그쳤다. 지난해 선거에서 득표율 46% 대 54%로 진 밀러 씨는 내년 선거에서 당선 가능성이 엿보이는 후보 리스트에 이름도 올리지 못했으나 하루아침에 주목을 받게 됐다.

윌슨 의원의 후원 조직 간부 3명은 10일 사임했다. 윌슨 의원이 10년 전 조직한 컬럼비아도시연맹의 J T 맥러혼 사무총장은 “의회에서 그렇게 부적절한 행동을 한 정치인과 더는 관련되고 싶지 않다”면서 “사우스캐롤라이나 전체의 이미지가 실추된 슬픈 날”이라고 말했다.

언론에는 비판 보도와 칼럼이 넘쳐났다. 뉴스위크는 “윌슨 의원은 공영 건강보험 도입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과 네 아들 모두 무료인 군인건강보험(TRICARE)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예비역 대령 출신인 그가 TRICARE를 이용하는 건 문제가 없지만 진보성향 언론이 칼날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의정감시단체인 ‘책임정치센터’의 정치인 후원금 목록에 따르면 윌슨 의원은 건강 관련 기관에서 2007∼2008년 5만8000달러, 2002년부터 지금까지 총 24만 달러(제약사, 요양원 등을 합치면 41만 달러)의 후원금을 받았다. 최대 후원자 25곳 가운데는 미국병원연합, 케어코어(건강보험관리회사), 치과협회 등이 포함돼 있다. 후원금 출처를 20여 개 그룹으로 분류할 때 건강보험 관련이 가장 많았다.

윌슨 의원은 온화한 품성의 소유자라는 평을 받지만 강경 보수 성향의 연설을 자주 해 왔으며 최근 지역구에서 타운홀 미팅을 주최해 민주당의 건보 개혁을 비판해 왔다.

건강보험 논의과정에서 이번 일은 일과성에 그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찬반론자 간의 감정적 골의 깊이가 확인돼 오바마 대통령 지지자들이 결집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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