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나라의 미래, 교사 경쟁력에 달렸다” 교사평가 강화 바람

  • 입력 2009년 5월 23일 02시 59분


학업성취도 만성 부진땐 교사 해고-학교폐쇄 조치까지
교장이 수업관찰후 ‘평가서’…학생-학부모 의견도 반영
연봉과 승진에 결정적 영향

교사들도 평가받는 것 당연시
“성적 올리기 압박감 크지만 자기계발 노력 자극제”



“O월 O일 2교시에 귀하의 수업을 참관할 예정입니다.”

지난달 초 미국 메릴랜드 주의 중학교 교사인 재닛 미첼 씨에게 교장의 통지서가 전달됐다. 미첼 씨는 ‘평가 시즌이 돌아왔구나’라고 실감하며 교실을 둘러본다. 해마다 치르는 일이지만 긴장이 된다.

마침내 통보된 수업시간이 되자 학년 담당 교감이 교실에 들어와 뒤에 앉는다. 교감은 미첼 씨가 수업을 진행하는 내내 노트북에 뭔가를 계속 입력한다. 미첼 씨는 90분간의 수업이 ‘워밍업→교사의 교습→학생들의 그룹작업→평가→마무리’라는 표준 스케줄대로 진행되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인다. 교감은 교실 게시물도 꼼꼼히 들여다본다. 학생들에게 배운 내용을 이해했는지도 물어본다.

며칠 뒤 교감과 교장이 미첼 씨에게 수업을 듣는 학생 3명을 불렀다. 교사가 얼마나 수업을 성실히 하는지, 학급 관리는 효율적인지 등을 묻기 위해서다. 마지막 단계로 교장이 미첼 씨를 불렀다. ‘관찰평가 후 면담(Post Observation Conference)’ 순서가 된 것이다. 교장은 수업관찰, 학생들의 의견을 토대로 작성한 평가서를 보여주며 자신의 의견을 들려준다. 미첼 씨가 평가 결과에 동의하지 않으면 카운티(한국의 군·郡) 교육위원회에 조정신청을 제기할 수 있다.

미첼 씨는 “교장(교감)의 관찰평가는 전체 평가의 일부분이고 다소 형식적인 측면도 있지만 교장의 평가서가 교사로서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항상 신경이 쓰이고 자극이 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미국 교사들은 평가를 받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긴다. 대부분 지역별로 오래전부터 다양한 교사평가제가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미국에도 최근 더 강력한 교사평가제 도입 바람이 불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훌륭한 교사는 학생들의 성취를 향상시킨 데 대한 보상으로 더 많은 돈을 받아야 하며 더 많은 권한과 책임이 부여되어야 한다. 반면 나쁜 교사들은 교실에서 퇴출시킬 수 있어야 한다”며 교사평가 및 성과급 확대의 깃발을 앞장서 들었다. 최근 확정된 2010회계연도 예산안에는 교원 성과급과 차터스쿨 확대를 위한 예산이 대폭 증액됐다.

일선에선 미셸 리 워싱턴 교육감을 비롯한 곳곳의 교육책임자가 평가제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계인 리 교육감은 전통적 평가 방식인 수업관찰과 콘퍼런스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평가시스템 혁신책을 수개월째 추진 중이다. 혁신책에는 학생들의 표준 시험점수가 어떻게 향상되는지를 추적해 이를 교사평가에 반영하는 방법이 포함되어 있다. 워싱턴의 경우 교사평가 제도의 변경은 교육청의 권한이다. 1990년대 중반 교원노조가 당시의 평가 시스템에 대한 재협상을 거부함에 따라 시의회가 교육청이 노조와의 협의 없이 평가 제도를 바꿀 수 있도록 위임했기 때문이다. 학생 성적을 교사평가에 연결하는 것은 교원노조가 특히 민감하게 여기는 대목이지만 이미 휴스턴, 시카고 등의 일부 지역에선 부분 도입이 시작됐다.

성과급제 확대를 놓고 18개월째 워싱턴교원노조(ATF)와 줄다리기를 해오고 있는 리 교육감이 신분보장제도의 ‘성역’을 깨기 위해 내놓은 시도 중 하나는 ‘90일 재평가 제도’다. 이는 평가 기준항목의 3분의 1 이상에서 ‘불만족(unsatisfactory)’ 등급을 받은 교사에게 90일간 교장과 공동으로 노력해 향상을 이루도록 기회를 주는 제도다. 향상이 없으면 그해 말에 해고될 수도 있다. 교원노조는 “신분 보장을 흔들고 교육 내용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미국은 지역별로 내용은 다양하지만 상당수 교육청이 학부모 학생 동료교사에 의한 평가를 병행하고 있다. 메릴랜드 주 프린스조지 카운티의 경우 교육청이 학생과 학부모에게 온라인으로 학교 평가 설문지를 돌린다. 50여 개 설문을 통해 교사들의 실력, 수업 성실도, 교육 환경 등을 평가한다.

교사 사이의 상호 평가 시스템도 활성화돼 있다. ‘인스트럭셔널팀’이란 교사 팀이 구성돼 동료 교사가 일주일에 한 번씩 수업을 참관하고 보고서를 쓴다. 종합평가 결과 학생 관리가 부진한 걸로 나타난 교사는 여름에 카운티가 운영하는 교사 교육기관에서 코스를 밟아야 한다. 대부분 지역에선 평가 결과가 보수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임시교사→프로페셔널 교사 서티피케이트→어드밴스트 교사 서티피케이트’ 등 교사 경력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교장의 평가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학생 성적이 직접 교사평가에 연결되지 않는다 해도 모든 주가 해마다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표준 시험을 치르고 학교별 성적이 적나라하게 공개된다. 카운티 교육청의 예산 지원에서 성적이 나쁜 학교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학업성취도가 만성적으로 기준치에 미달하면 학교장 해임은 물론 폐교되고 전체 교사가 해고될 수도 있다.

최고학군으로 꼽히는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K 교사는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압박감을 크게 느낀다”고 말했다.

프린스조지 카운티 켈모어중학교의 밥 허(한국명 허선) 교사는 “자기계발을 독려하는 다양한 보상과 더불어 평가 시스템이 교사들에게 상당한 자극이 되는 게 사실”이라며 “고용 안정성이 비교적 높은데도 현재의 조건에 안주하기보다는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고 밤낮으로 연구하는 교사들이 주변에 많다”고 말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 美 교사연합 조지 잭슨 대변인 인터뷰
“교사평가 공감… 징벌 아닌 교육質 향상에 초점 맞춰야”

“기본적으로 교사에 대한 평가는 징벌적인(punitive) 차원이 아니라 교사의 전반적인 자질 향상과 학생들의 배울 권리를 더 많이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미국 전역에서 140만 회원을 확보해 미국교육협회(NEA)와 더불어 미국 내 양대 교사노조 중 하나인 미국교사연합(AFT)의 조지 잭슨 대변인은 2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교사평가는 교사의 잘못을 찾아내 좌절시키려 하기보다는 전반적인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좋은 교사와 나쁜 교사를 가려 신상필벌하겠다고 하는데….

“대통령의 생각은 미국의 어린이들이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선생님들 밑에서 배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고 우리도 이런 목표에 공감한다. 우리의 요구는 그런 결정을 내리는 평가과정에 교사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와 교사노조가 비전을 공유한다는 뜻인가.

“오바마 행정부와 갈등을 일으킬 필요도 없고 더더욱 그는 우리의 적이 아니다. 우리는 개혁 대상이 아니고 공동의 노력으로 최선의 방법을 찾아보자는 데 동의한다. 설령 생각이 좀 다르다 해도 가장 좋은 방안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화합하고 협력할 수 있다.”

―교사평가와 관련한 노조의 요구사항은 무엇인가.

“모든 교사가 직무를 수행하는 동안 자신의 전문분야를 확보하고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정부의 지원방안이 먼저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평가과정에서 행정당국이 전적으로 권한을 행사하기보다는 제도의 고안단계부터 실제 평가에 이르기까지 교사들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 美 최고 공립학군 페어팩스 카운티 문일룡 교육위원
“교사시작 3∼5년이 중요… 혹독한 평가로 33% 그만둬”

“처음 교사가 될 때 다들 혹독한 평가과정을 거칩니다. 첫 5년 사이에 탈락 또는 스스로 그만두는 경우가 3분의 1가량은 된다고 봅니다.”

미국 최고 공립학군으로 꼽히는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 문일룡 광역교육위원(52·변호사·사진)은 22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좋은 교육여건은 우수한 교사를 확보하는 데서 나오며, 이를 위해선 우리가 제대로 교사를 뽑았는지를 알기 위한 평가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사 평가 기준은 어떻게 정하나.

“교사 평가 제도는 예전부터 있었다. 평가기준은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이 뭐냐에 따라 변해왔다. (직선인) 교육위원들이 큰 틀을 정하고 교육청 실무자들이 기준을 정해왔다. 우리 카운티는 교사의 첫 3년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철저한 평가를 거친 교사에 대해선 학교당국이나 본인 모두 어느 정도 자신감과 신뢰감을 갖게 된다.”

―페어팩스 카운티의 이름난 학교 가운데는 30, 40대의 젊은 교장이 특히 많이 눈에 띈다. 교장은 어떻게 평가받는가.

“교장은 카운티 지역을 8개로 나눈 각 클러스터의 담당 부교육감이 평가한다. 교장들은 자신의 성적을 본인들이 느낀다. 지역 커뮤니티에서 평판이 뻔하며 학생 학부모들의 학교 평가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교장이든 교사든 성적 평균만 갖고 평가할 수는 없다”

문 위원은 “평가에는 피드백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다양한 피드백을 줬는데도 부족한 점이 달라지지 않을 경우엔 전보조치를 취하거나 다른 업무 직종으로 발령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수와 복지를 향상시키는 것과 더불어 교사들의 자기계발을 계속 독려하는 것이 페어팩스 교육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