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한마디에 가스 새는 ‘자원동맹’

  • 입력 2009년 4월 28일 02시 55분


에너지 회담서 “나부코 가스관 지원” 발표

투르크-아제르 등 환영… 러 가스동맹 흔들

미국의 입김으로 중앙아시아의 ‘자원 동맹’ 축이 흔들리고 있다.

러시아 동맹국 투르크메니스탄은 25일 러시아가 반대해 온 나부코 가스관 사업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고 러시아 일간 코메르산트가 보도했다.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중개해 온 터키와 아제르바이잔도 러시아를 두둔하던 태도를 바꿔 이 사업을 환영하고 있다.

이란과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시작해 터키-루마니아-헝가리-오스트리아로 이어질 총연장 3300km의 나부코 가스관은 지금까지 러시아의 반대에 부닥쳐 진척을 보지 못했다. 유럽 국가들은 이 가스관으로 중앙아시아의 천연가스를 자국에 보낼 계획을 세워 놓았지만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천연가스 대부분을 러시아에 수출해 온 투르크메니스탄도 “나부코로 가스를 보내면 수입을 전면 중단하겠다”는 러시아의 압력을 견디지 못했다.

잠자던 프로젝트를 ‘활성 모드’로 바꾼 인물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 임명한 리처드 모닝스타 카스피 해 특사. 그는 24일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열린 에너지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전력을 다해 나부코 사업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특사가 가스 소비국인 유럽 에너지 정상회담에 참석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불가리아 현지 언론은 전했다. 그는 러시아가 중앙아시아에서 추진하는 사우스 스트림 가스관 건설계획에 대해 “나부코보다 비용이 두 배 정도 더 드는 사업”이라고 역설했다. 사우스 스트림은 나부코 계획에 대해 러시아가 내놓은 대안으로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터키가 참여 의사를 밝혔다.

모닝스타 특사의 말은 가스판매 통로가 한정됐던 중앙아시아 자원 부국들의 수출 다변화 열망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 러시아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러시아 에너지 전문가 드미트리 알렉산드로프 씨는 “러시아에 가스를 값싸게 공급하던 투르크메니스탄과 카자흐스탄 등 자원수출국은 가스 동맹을 바꿀 구실을 찾고 있었는데 모닝스타 특사의 말은 이들 국가를 구원한 셈”이라고 말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악의 축’이라고 불리던 이란에 대한 파격적 발언도 러시아 주도의 가스 동맹을 흔드는 계기였다. 모닝스타 특사는 “춤은 항상 둘이서 출 필요가 있다”며 “이란도 나부코에 참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기대 심리도 가스 동맹을 흔드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러시아 전문가 미하일 크루티힌 씨는 “클린턴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가 주로 군사 동맹과 안보라는 관점에서 중앙아시아에 접근한 반면 오바마 행정부는 이 지역 천연자원의 수입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앙아시아의 가스를 유럽에 독점 판매해 온 러시아는 체코 그리스 이탈리아가 등을 돌려 나부코 사업을 지지하고 나서자 충격에 휩싸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소피아에서 열린 에너지 정상회담 참석 일정을 취소할 정도였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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