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부동산 노려라” 엔화의 급습

  • 입력 2009년 1월 20일 02시 57분


엔高 - 국내 부동산값 급락 타이밍 맞춰 ‘이삭줍기’ 행렬

《일본의 한 사모펀드는 최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있는 S빌딩을 사고 싶다는 뜻을 서울의 한 부동산컨설팅 업체에 밝혀왔다. 일본 사모펀드 측은 지상 6층 규모의 이 오피스빌딩을 380억 원에 사겠다고 제의했다. 펀드 측 관계자는 “빌딩 임대료 등으로 연간 수익률이 7% 정도는 될 것이란 판단을 하고 투자에 나선 것”이라며 “사실상 제로금리인 일본에서 돈을 굴리는 것보다 수익률이 훨씬 좋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사태 이후 일본계 자금이 한국 진출을 시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본 엔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지난 1년 사이에 두 배 가까이 급등(원화가치 급락)하고 한국 부동산 가격이 크게 떨어지자 일본 투자가들이 한국에서 ‘이삭줍기’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 역세권 빌딩, 상가에 눈독

외국인 투자가들의 한국 내 부동산 매입을 자문하는 포시즌씨앤에셋㈜은 최근 서울의 오피스빌딩을 사려는 일본 투자가들과 컨설팅 계약을 체결했다. 이 업체는 서울 중구 명동 E빌딩과 강남구 압구정동 S빌딩 등 2건을 물색해 입지와 수익성을 분석한 결과를 일본에 보냈다.

2006년 11월 시세는 명동 E빌딩 280억 원, 압구정동 S빌딩 180억 원이었다. 현재 시세는 고점(高點)으로 평가됐던 당시보다 20∼30%가량 떨어진 상태.

포시즌씨앤에셋 정성진 사장은 “일본 투자가들이 조만간 한국을 방문해 투자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라며 “지난해 원-엔 환율 폭등 이후 일본 투자가들의 부동산 구입 문의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일본 투자가들은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 신성건설의 사옥을 사겠다는 의향서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신성건설이 이 의향서를 접수한 직후 법원에서 기업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받는 바람에 계약은 성사되지 않았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현재 일본에서는 가격메리트가 높아진 한국의 부동산을 사기 위한 투자펀드가 활발하게 결성되고 있다. 한국의 부동산에 투자하기 위해 100억∼200억 원 단위의 사모펀드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 한국 부동산 투자를 목적으로 조성된 일본 내 사모펀드는 총 1조4000억 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 외화 이탈 완화… 부동산 경기에도 도움

일본계 투자자금이 한국으로 몰려오는 것은 엔고와 한국 부동산 값 급락이라는 호재가 겹쳤기 때문이다.

지난해 초 100엔당 838원이던 원-엔 환율은 12월 8일에는 연초의 두 배 수준인 1598원까지 치솟았다. 이달 19일 기준 원-엔 환율도 100엔당 1499원으로 지난해 초에 비해 79% 올랐다. 지난해 상반기에 비하면 절반 정도의 돈으로 서울의 알짜 부동산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본인들은 대부분 서울의 역세권 매물만 고집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명동과 강남 등의 상가와 오피스빌딩, 서비스드레지던스호텔 등 3가지만 집중 검토하고 △연 6% 수익률을 요구하며 △3년 뒤에 차익을 남기고 떠나기 쉽도록 500억 원 이하 물건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

김선덕 한국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일본계 자금의 국내 유입은 미국 등 선진국 자금이 국내 부동산시장에서 이탈하는 충격을 덜어주고 부동산경기 침체도 완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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