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학교 3곳 포격으로 반전여론 급부상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월 8일 02시 58분



이스라엘 “강경책 더 득될것 없다” 분위기

유혈사태해결 새국면… 휴전 합의까진 먼 길


이스라엘 정부가 7일 개전 11일 만에 국제사회의 중재안을 조건부로 수용하겠다고 밝혀 가자지구 유혈사태 해결에 한 줄기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이 조건부로나마 이집트와 프랑스가 중재한 휴전안을 받아들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6일 어린이들의 희생이 많았던 유엔 학교 폭격사건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발이 거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제사회에서는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고조됐으며 이스라엘 내에서조차 반전 여론이 급격히 부상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예루살렘포스트 등 이스라엘 언론들은 지상전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으며, 전쟁 장기화에 따른 비용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당장 내달 총선을 앞둔 이스라엘 지도부는 이런 여론 속에서 강경책을 지속해봤자 크게 득 될 것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을 법하다.

여기에 11일간의 폭격과 지상전으로 소기의 군사적 목적은 이뤘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은 또 매일 3시간 폭격 중단 발표에 이어 중재 회담에 나서는 등 평화적 사태 해결 의지를 드러냄으로써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도 어느 정도 진정시킬 것을 노리고 있다.

현재 이집트가 이스라엘 측에 제시한 중재안의 구체적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집트와 가자지구 접경선인 길이 15km의 ‘필라델피 루트’에 다국적군을 파견하는 방안이 포함됐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필라델피 루트는 수백 개의 지하 터널이 밀집한 하마스의 주요 밀매 통로로 현재 이집트가 통제하고 있다. 중재안은 또 해군을 동원해 해안 무기 밀수를 단속하는 대신 이집트와 인접한 국경도시 라파를 재개방해 식료품과 의약품 등 생필품 교역을 허용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안으로는 이스라엘 측이 제시한 2가지 조건 중 하나, 즉 하마스의 재무장 억제는 어느 정도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다른 조건인 ‘적대적인 로켓 공격 중단’에 대해서는 아직 하마스의 대답이 나오지 않고 있다.

하마스 정치국의 무사 아부 마르주크 부위원장은 7일 AP통신에 이스라엘이 점령 활동을 중단하지 않는 한 영구적인 휴전은 없고 ‘저항’만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가자지구의 하마스 지도자들은 공격을 피해 은신처 깊이 숨어있어 이스라엘은 휴전 협상의 상대도 찾기 힘든 상황이다.

이스라엘의 휴전안 조건부 수용으로 가자 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포성이 완전히 멈추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분석도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유엔학교 희생 왜 컸나

대피시설 지정… 어린이 포함 수백명씩 수용


소년은 정신을 잃은 채였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시뻘건 피는 윗도리까지 적셨다. 현장 구호대에 의해 앰뷸런스로 옮겨지는 작은 몸이 축 늘어진 채 힘없이 흔들렸다.

길에는 찢어진 옷과 시체, 신발들이 나뒹굴었고 무너진 건물더미 속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나씩 밖으로 옮겨지는 시신들 사이로 절박한 고함이 섞였다. 히잡을 쓴 여인은 바닥에 쓰러진 아이를 껴안고 절규했다.

6일 BBC방송 등 외신들이 전한 이스라엘군의 폭격 현장은 참혹했다. 이날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피란처로 사용돼 온 유엔 학교 세 곳과 의료시설에 대포를 쏘았다. 희생자 대다수가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으로 알려지면서 국제사회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어린 희생자만 200명”=이날 오후 가자시티 북쪽의 자발리야 난민촌에서 유엔이 운영하고 있는 알파쿠라 학교에 세 발의 120mm 박격포탄이 떨어졌다. 이 유엔 학교는 이스라엘군이 지상공격을 개시한 3일 이후 가자지구 주민 800명 이상이 피란처로 이용하던 곳.

이스라엘군이 이곳 외에 다른 2곳의 유엔 학교와 의료시설을 공격하면서 최소 48명이 사망하고 150여 명이 부상했다. AFP통신은 한 일가족 중 12명이 사망했고 이 중 7명은 12세짜리를 포함한 어린이라고 전했다.

이로써 이스라엘이 가자 공습을 시작한 지난해 12월 27일 이후 사망자는 모두 689명으로, 이 중 어린이가 220명에 이른다고 이 통신은 보도했다. 부상자는 2900여 명으로 늘었다.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의 존 징 씨는 “유엔 학교에는 유엔 깃발이 선명하게 나부끼고 있었고, 공습 대상에서 제외해야 하는 곳이라고 이스라엘 당국에 지정해 알려줬던 건물”이라고 말했다. UNRWA는 가자지구 내 23개 학교의 내부 시설을 고쳐 1만50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에게 피란처를 제공해 왔다.

이스라엘은 이날 사격이 유엔 학교 내부에서 이스라엘군으로 박격포탄이 발사된 뒤 그에 대한 응전 차원에서 이뤄졌으며 유엔 학교에서 발생한 사망자 중에는 하마스 무장요원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목격자들은 하마스 요원들이 학교 근처에서 박격포를 발사했고 이후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받고 도주했다고 전했다. UNRWA의 크리스토퍼 귀네스 대변인도 “유엔 학교에 하마스 무장요원이 없었고 전투 행위도 없었다는 점에 99.9% 확신한다”며 “이에 대한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엔에 따르면 학교나 의료시설은 전쟁 시 공격에서 제외하도록 국제법상 규정돼 있다.

▽슬픔이 분노로=무고한 희생자가 눈 덩이처럼 불어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체념과 공포는 차츰 분노로 변하고 있다. 이날 이스라엘군에 맞서 대항전을 펼친 팔레스타인인 중에는 11세 소년도 포함됐다.

하마스 지도자 마무드 자하르는 “시온주의자들(이스라엘)이 우리 아이들을 죽임으로써 자신들의 자녀가 우리 손에 죽는 것을 정당화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하마스는 “우리가 당한 것처럼 이스라엘의 어린이들도 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며 보복을 다짐했다.

아동심리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로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받은 정신적 충격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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