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회담→포괄적 접근…클린턴 대북정책이 오바마의 참고서

  • 입력 2008년 11월 7일 02시 58분


1990년대 북핵-미사일위기 협상통해 해소

‘오바마 행정부’ 대화중시 정책 출발점 될 듯

미국에 8년 만에 다시 민주당 정권이 들어섬에 따라 1992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을 이끈 빌 클린턴 민주당 정부의 대북정책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클린턴 행정부의 경험과 정책 기조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상당히 중요한 참고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적극적인 개입(engagement)을 통해 국제적인 영향력을 확대한다는 세계정책의 틀 속에서 나왔다. 출범 직후인 1992년 제1차 북핵 위기가 시작되자 북한과의 양자회담을 통해 1993년 6월 북-미 공동성명과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를 도출했다.

1998년 8월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했을 땐 클린턴 대통령은 그해 11월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을 대북정책 조정관으로 임명해 대북정책 권고안을 작성토록 했다.

이른바 ‘페리보고서’에 따라 1999년 11월 북-미 베를린 회담이 열렸고 북한과 미국은 2000년 10월 북-미 공동코뮤니케에 합의했다. 공동코뮤니케의 핵심 내용은 북한이 핵 및 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은 북-미 수교 및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클린턴 행정부는 사안이 터질 경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무급 및 고위급 양자회담 채널을 사용하곤 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집권 1기 때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거부한 것과 대비되는 것이다.

또 ‘포괄적 접근’ 방식을 사용했다. 북한이 원하는 모든 것(체제 보장과 경제적 지원 등)과 미국 등 국제사회가 원하는 모든 것(북한의 비핵화와 인권문제의 개선 등)을 동시에 맞바꾸는 협상의 방식이다.

실제로 1994년 제네바 합의에서 미국은 비핵화 약속의 대가로 경수로 제공과 함께 △무역과 투자 장벽의 완화 △양국 수도에 연락사무소 개설 △대사급 외교관계 체결 등 정치, 경제관계의 정상화에도 합의했다.

2000년 공동코뮤니케는 한발 더 나아가 ‘과거의 적대감에서 벗어난 새로운 관계’의 수립을 언급하고 1953년 정전협정을 평화체제로 바꾸는 문제까지도 언급했다. 이런 포괄적 접근 방식은 북핵 문제에서 진전을 보지 못하던 제2기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영향을 줬다. 이에 따라 2005년 9월 6자회담에서 9·19공동성명이 채택됐다.

다만 민주당의 대북정책이 군사적 대응 등의 가능성을 배제한 유화 일변도의 정책은 아니다.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과 핵 갈등이 극도로 심화된 1994년 초 북한 영변 핵 시설 등에 대한 국지적 타격(surgical strike)을 고려했다. 오바마 당선인은 북핵 문제에 대해 “군사적 수단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지속적이고 직접적이면서 공세적인 외교활동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해 왔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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