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송인의 죽음…부시 “통찰력 지닌 사람” 직접 조문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6월 19일 02시 56분



팀 러서트 씨
팀 러서트 씨
17일 오후 미국 워싱턴 시내 북서부의 사립학교인 세인트 알반스 고등학교 교정에는 외부 사람들이 몰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줄을 섰다. NBC방송 '언론과의 만남' 프로 진행자 겸 정치 전문기자였던 팀 러서트 씨의 빈소를 찾은 사람들이었다.
따가운 햇볕 아래 1시간 넘게 기다려 '웨이크(장례 전날 밤샘을 뜻하는 추모의식)'에 참석한 수천 명 가운데 상당수는 러서트 기자와 개인적 인연이 전혀 없는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조문객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내외도 포함돼 있었다.
러서트 기자가 심장마비로 숨진 지 나흘이 지났지만 미국의 주요 방송과 신문에는 아직도 그를 추모하는 프로그램과 칼럼, 특집보도가 끊이지 않는다. 특히 CNN 등 방송들이 경쟁사 기자의 추모에 그토록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외국인의 눈에는 신기해 보일 정도다.
정치인들도 한결같이 그를 추모하는 성명이나 발언을 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20분가량 빈소에 머물면서 "진정으로 통찰력과 정직성을 지닌 사람이었다"고 추모했다.
러서트 기자의 경력에는 별로 특이한 점이 없다. 뉴욕 주 버펄로의 중하층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의원사무실 등에서 일하다 1984년 NBC방송 워싱턴 지국에 입사한 이래 한 직장에 몸담았다. 1991년부터 진행해 온 '언론과의 만남'은 정치인 등과의 심층 대담 프로다.
그런 종류의 대담 프로는 미국에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하지만 러서트 기자의 매력은 그가 정파나 자신의 이념적 선호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심층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데 몰두했다는 점이다. 그는 인터뷰 전에 엄청난 분량의 자료를 조사해 오로지 사실로 승부했다.
그는 최근 스콧 매클렐런 전 백악관 대변인의 폭로 자서전 파문이 터졌을 때 딕 체니 부통령 측이 '일방적 주장'이라며 발뺌하자 "이 사안은 진보단체가 만든 일방적 작품이 아니다"라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그렇지만 체니 부통령조차 "팀을 잃은 건 너무 큰 비극"이라며 언론인으로서 러서트 기자를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가차 저널리즘'(Gotcha journalism·언론사가 자신이 의도하는 쪽으로 전체내용을 몰고 가기 위해 인터뷰 내용을 교묘히 편집하거나 앞뒤에 방송 취지에 유리한 내용들을 연결시키는 행태)에 절대 빠져들지 않았다. 그는 항상 정말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상대방이 과거에 했던 발언들을 면밀히 조사해와 제시했다. 그와 마주 앉아서는 어떤 것도 피해갈 수 없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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