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유학생 5명 극적 생환기…“미친 듯 달렸다”

  • 동아닷컴
  • 입력 2008년 5월 18일 19시 54분



"우르릉 땅이 구르는 듯 하더니 산이 무너지면서 집 채 만한 바위가 비 오듯 쏟아졌다. 가벼운 상처만 입고 이렇게 살아있는 게 기적이다."

중국 쓰촨(四川) 성을 뒤흔든 지진 당시 진앙인 원촨(汶川) 현에서 배낭여행을 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톈진외국어대 유학생 백준호(24) 씨 등 5명은 18일 청두(成都)의 김일두 총영사 관저에서 극적인 생환기를 들려주었다.

"12일 오후 2시경 원촨 현 워룽(臥龍) 판다보호구역을 관광하고 7인승 렌터카에 올라 선루프를 열어 제친 채 협곡의 자연풍광을 감상하며 잉슈(映秀) 진으로 내려갈 때였다. 우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땅이 울렁거리더니 갑자기 커다란 바위들이 굴러 떨어지고 우리가 탄 차는 3m 아래 계곡으로 굴렀다. 정신없이 빠져나와 비처럼 쏟아지는 바위들을 피해 급경사로 1~2km를 미친 듯이 내달렸다. 잠시 후 공터의 큰 바위가 나왔는데 뒤쪽에 대피해 있던 주민 3명을 보고 우리도 그곳에 숨었다. 하지만 바위가 계속 떨어지는데다 운전 기사가 생각나 다시 사고 현장으로 올라갔다."

- 중국인 운전기사는 숨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운전사가 운전대와 좌석에 끼여 엄청난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었다. 손으로 잡아끄니 피가 솟구쳐 나왔다. 운전사를 살리려고 칼로 좌석 아래 시트를 잘라냈지만 도저히 꺼낼 수 가 없었다. 바위가 계속 굴러 떨어지는 와중에 운전사를 살리려고 2시간 동안 사투를 벌였지만 운전사가 의식을 잃은 데다 이러다가는 우리도 모두 죽겠다는 생각에 다시 바위를 피해 산길을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 어떻게 주민들에게 발견됐나.

"산 위로 오른 지 30분 정도 지났는데 반대쪽에서 주민들이 불렀다. 징검다리를 건너니 수력발전용 댐 옆의 동굴에 주민들 15명이 대피 중이었다. 저녁이 돼 추워지자 붕괴된 폐가를 찾아 들어갔는데 여진으로 집이 무너지는 바람에 급하게 빠져 나왔다. 그때 머리를 다쳤다."

- 구조대에 발견된 경위는.

"결국 그날(12일) 밤부터 14일까지 동굴 주변에서 주민들과 노숙을 했다. 그동안 여진은 계속됐다. 15일 아침 깨보니 댐 수위가 갑자기 높아져 있었다. 이대로는 수몰될 것 같아 오전10시경 주민 15명과 동굴을 나섰다. 3m 높이의 댐을 밧줄로 오르고 15km 산길을 15시간 걸어서 폭포 옆 산장을 발견해 하루를 묵고, 미리 와 있던 다른 이재민 30여명과 함께 50여명이 16일 오전 6시 출발해 낮 12시 반 잉슈진에 도착했다. 중국 구조대를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군 위성 전화로 영사관과 가족들과 처음 통화했다. 기상악화로 헬기가 뜨지 못해 17일 오후 2시간 걸어서 댐 호수로 나와 배를 타고 두장옌(都江堰)의 쯔핑푸(紫坪鋪) 댐을 거쳐 밤 9시경 차량으로 청두에 도착했다. 인민해방군 의료진 부대에서 하루 밤을 지냈다."

- 그동안 먹을 것은 어떻게 해결했나.

"처음 만난 주민들이 2박3일간 쌀죽을 줬고, 탈출 과정에서 만난 중국인들도 먹을 것을 줬다. 잉슈 진의 무장경찰 구조대는 우리를 보자마자 음료수와 컵라면 등 먹을 것과 치료약을 한 아름 안겨줬다. 이재민이 하도 많아 배를 타기도 어려웠는데 현지 구조부대 지도자로 보이는 간부가 3명의 병사를 도우미로 붙여주고 먼저 배를 탈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백 씨는 "앞으로 119 구조대에 자원해 생명을 구해준 분들께 보답하고 싶다"며 구조에 도움을 준 사람들에 고마움을 표시한 뒤 "그동안 산을 좋아했지만 앞으로는 절대 산에 오르고 싶지 않다"고 진저리를 쳤다. 백 씨 등은 이날 오전 톈진외국어대에서 청두로 날아온 조선족 교수와 휴식을 취한 뒤 이날 밤 항공편으로 톈진으로 돌아갔다.

청두=하종대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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