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정부 “원주민 탄압 사죄”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2월 14일 02시 58분


러드 총리 ‘도둑맞은 세대’에 첫 공식 사과

호주 정부가 과거 원주민(애버리지니)들에게 가했던 국가적 탄압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다고 AP와 AFP통신 등 외신들이 13일 보도했다.

케빈 러드 호주 총리는 이날 오전 9시 수도 캔버라 국회의사당에서 원주민 대표들과 전직 총리들, 의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361단어로 된 사과문을 3분 동안 낭독했다.

러드 총리는 사과문에서 “우리는 ‘도둑맞은 세대’와 그 후손의 고통과 아픔, 그리고 남은 가족들에게 사과한다”고 밝혔다. 또 “긍지 높은 사람들과 자랑스러운 문화를 모욕한 데 대해서도 사과한다”면서 “이러한 불의는 절대로, 결코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날 사과문 발표는 지난해 12월 취임한 러드 총리의 첫 국회 연설이다. 총리의 사과는 1910년부터 1970년까지 정부가 동화 정책에 따라 원주민 자녀 3∼10명 중 1명을 백인 가정과 단체시설에 강제로 보냈다는 보고서가 나온 지 11년 만에 이뤄졌다. 강제로 끌려간 원주민 어린이들은 전통문화와 생활습관에서 단절됐다는 의미로 ‘도둑맞은 세대’로 불린다.

지난해까지 11년 반 동안 장기 집권했던 존 하워드 정부는 과거의 잘못에 대해 현 세대가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며 정부 차원의 사과를 거절했었다.

원주민들은 러드 정부의 사과를 크게 환영했다. 러드 총리가 사과문을 의회에 제출한 12일 의사당에는 하얀 물감으로 온몸을 장식한 원주민들이 들어와 전통축제를 벌이고, 지난해 새로 구성된 의회 의원들을 환영해 달라고 조상들에게 기도했다. 원주민이 의사당에 들어간 것은 사상 처음이다. 현재 호주 원주민은 45만 명으로 전체 인구(2100만 명)의 2.1%를 차지한다. 이들의 평균 수명은 일반 국민에 비해 17년이나 짧고 5년 이하 유아 사망률은 백인보다 3배 이상 높다. 범죄율과 실업률, 문맹률도 가장 높은 집단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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