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문화 경험한 ‘통합 이미지’ 크게 어필
젊은 비주류 출신 엘리트에게서 ‘희망’ 되찾아
“그는 정말 말을 잘한다. 정확하고 점잖은 어휘를, 신뢰감을 주는 방식으로 전달한다.”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경선 예비주자 중 한 명으로 아직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지난해 봄이었다. 미국 워싱턴의 한 싱크탱크 연구원은 “주요 후보들과 여러 차례 토론을 해 봤는데 그 결과 오바마를 가장 주목하게 됐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똑같은 말을 해도 듣는 사람이 ‘참 오래 생각해서 나오는 말이구나’라는 느낌을 갖게 하는 재주가 있더라. 미국 대통령의 한마디 한마디가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정확하고 품위 있는 그의 언어 구사력은 매우 중요한 덕목으로 인정받게 될 것 같다”는 설명이었다.
요즘 미국에선 오바마 의원의 경쟁력 비결을 찾는 논의가 분분하다.
개인적 장점으로는 독특한 성장 배경에서 우러나오는 ‘21세기형 아메리칸 드림’ 이미지가 꼽힌다. 흑백 혼혈로서 미국 본토가 아니라 하와이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가 이혼한 뒤 인도네시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0대 후반 마약에 손을 대기도 했지만 아이비리그 대학을 나와 민권 변호사에서 사회운동가,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이런 성장사가 여러 문화, 여러 계층을 두루 경험한 통합의 이미지를 만들어내 ‘조지 W 부시 시대의 이념, 계층 분열’에 지친 젊은 세대에 어필하고 있다는 것.
정치적으로 그의 가장 큰 경쟁력은 ‘변화’라는 어젠다를 선점했다는 점이 꼽힌다.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이던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라크전쟁 반대를 외치며 주목을 받았다. 당시 튀는 듯하던 그의 언행은 그 후 이라크 상황이 수렁에 빠져들면서 민주당 지지자들에게서 ‘뛰어난 통찰력과 소신’으로 평가받게 됐다.
옛 소련의 급팽창에 미국인들이 위기의식을 느끼던 1960년 43세의 존 F 케네디 후보가 그랬듯 이라크전, 테러, 카트리나 재해 등 수년간 우울한 뉴스에 지친 미국인들에게 ‘젊은 비주류 출신 엘리트’의 ‘변화 메시지’가 먹혀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실 이 같은 오바마 의원의 경쟁력은 치밀한 노력과 준비의 산물로 알려졌다. 그는 2004년 하버드대에서 연구 중이었던 퓰리처상 수상 경력의 뉴욕타임스 기자를 1년 넘게 쫓아다니며 “나를 위해 일해 달라”고 설득하는 등 최고 인재 모으기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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