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살아있다]제6장 日中전쟁(下)

  • 입력 2008년 1월 7일 13시 47분


티엔미엔도로(滇緬道路)의 중국 쪽과 버마(지금의 미얀마) 쪽을 잇는 원틴교(畹町橋). 돌다리였는데, 나중에 철제 다리가 되었다. 다리 중앙에는 쇠사슬이 걸려 있어, “중국과 미얀마의 국경을 넘어서는 안 된다”라고 쓴 게시판이 서 있다. 다리의 저쪽 편으로 미얀마의 국기가 보인다. =중국 윈난성(雲南省)에서, 이카가와(五十川) 촬영.
티엔미엔도로(滇緬道路)의 중국 쪽과 버마(지금의 미얀마) 쪽을 잇는 원틴교(畹町橋). 돌다리였는데, 나중에 철제 다리가 되었다. 다리 중앙에는 쇠사슬이 걸려 있어, “중국과 미얀마의 국경을 넘어서는 안 된다”라고 쓴 게시판이 서 있다. 다리의 저쪽 편으로 미얀마의 국기가 보인다. =중국 윈난성(雲南省)에서, 이카가와(五十川) 촬영.
조그만 마을에 있는 작은 다리의 큰 역할

중국은 8년 간에 걸친 일본군의 공격을 견디어 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이 수수께끼를 푸는 하나의 열쇠가, 베이징(北京)과 난징(南京)에서 멀리 떨어진 윈난성(雲南省)의 조그만 한 마을의 작은 다리라고 한다. 나는 그 다리를 찾아갔다.

“지금은 건기입니다만, 어제는 비가 내렸습니다”

소수민족인 나시족 운전기사가 핸들을 잡으면서 말했다.

도로 곁의 종려나무와 고무나무, 바나나 잎이 흔들린다. 도로를 따라서 흐르는 시냇물의 바로 저 편은 버마이다. 지금은 군이 정권을 쥐었고, 국명은 미얀마로 바뀌었다.

윈난성(雲南省) 서쪽 끝에 있는 로이리시(瑞麗市). 원틴(畹町)은 로이리시(瑞麗市)에 있는 인구 약 1만 명의 마을이다. 시가지에 원틴교(畹町橋)가 있었다. 다리를 건너면 미얀마다. 낡은 다리와 새로운 다리가 나란히 가설되어 있다. 판자를 깔은 낡고 작은 다리는 통행금지다. 전쟁중 이 다리를 통하여 미국, 영국 등지에서 대량의 물자가 중국에 운반되었다. 장제스(蔣介石)가 이끈 국민당 정부를 지원하는 ‘원장(援蔣)루트’였다.

운명을 쥔 물자 루트 / 인도로부터 공수도

전쟁의 불씨는 북방에서 상하이(上海)까지 퍼져, 장제스(蔣介石)는 수도를 임시로 난징(南京)에서 충칭(重慶)으로 옮겼다. 내륙 깊은 곳을 거점으로 한 지구전을 펼치려고 한 것이다. 더 깊은 내륙 쪽에 있는 윈난성(雲南省)의 성도인 쿤밍(昆明) 주변은 병기 공장 등이 입주한 후방 기지가 되었고, 이러한 지역에 지원 물자의 원활한 운송 여부가 장제스(蔣介石) 정권의 존속을 운명 짓는 중요 문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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