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살아있다]한도 가즈토시 작가

  • 입력 2007년 8월 24일 14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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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지식인 20명에게 묻다] 3.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10대 사건은?

문제 알고도 손쓰지 않는 내각-한도 가즈토시(半藤一利) 작가

(‘10대 사건’에) 순번을 붙인다는 것은 어렵습니다만, 첫번째로 중일 전쟁을 들었습니다. 근대국가로 전환한 일본의 제국주의가 확실하게, 구체적으로 야심을 드러낸 시기입니다.

그 때까지의 일본과 중국의 흐름으로 보아, 터질 일이 터진 것입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의 『시나 유기 (支那游記)』에서 아쿠타가와(芥川) 씨는 이러한 일은 전혀 의식하지 않고 쓰고 있습니다만, 중국이 얼마나 반일이었는지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언젠가 충돌하리라는 것은 당연히 걱정했지요.

그러나 일본의 역대 내각은 문제 해결의 의사가 없었습니다. 난징(南京)을 취했으니 전쟁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한코우(漢口)를 점령했으나 이 또한 끝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군대를 내륙으로 전진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임을 알면서도, 화평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를 알고 있으면서도, 결국 손을 쓰지 않았다. 가장 큰 교훈이 아니었겠습니까?

러일 전쟁의 문제는 전쟁 그 자체보다, 이긴 일본이 중국에 대해 우월감을 노골적으로 표한 것입니다. 그 때까지는 중국에 막연한 경의를 표해 왔지만, 상당한 우월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많은 중국 유학생이 와 있었습니다만, 러일 전쟁에서 승리를 확정 지을 무렵에는 유학생들을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고양된 기분에 의식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신해혁명 때의 지사들 중에는 일본 유학생 출신이 많습니다만, 모두 쫓겨나 버렸습니다. 이들을 소중히 여겼더라면.

3번째로 든 일본의 패배는 아시아 여러 나라에게는 기쁜 일이었습니다.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말은 슬로건에 지나지 않을 뿐으로, 일본인의 마음 속에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아요. 1944년에 나온, 동남아시아 각국에 예의를 가르친다는 책에는 ‘토인(土人)’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교만을 부리고 있었지요.

러일 전쟁 후의 일본이 강국, 대국 의식을 가진 끝에 벌어진 사건이 만주 사변으로, 모략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일만의정서(日満議定書)를 보면, 미일 안보 조약 내용과 비슷합니다. 일만 공동 방위를 위해서 만주국 내에 일본 군대를 언제든지, 어디든지, 얼마든지 주둔시킬 수 있다고 했습니다. 완전한 괴뢰 국가였습니다.

잠자는 대국에게 이긴 청일 전쟁은, 일본이 아시아의 맹주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만, 카쓰 카이슈(勝海舟)는 “중국은 그 정도의 나라가 아니다, 우쭐해서 깔보는 것은 큰 실수다”라고 소리 쳤습니다. 판단력이 흐려지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아직 그런 판단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한국 전쟁은, 말 그대로 전후 일본에 있어서 가미가제(神風)였습니다. 일본인들이 주로 마시던 술은 소주에서 토리스로, 오션, 산토리 등의 양주로 바뀌어져 갔지요. 한국 전쟁이라는 특수가 없었더라면, 전후 부흥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조선 사람들에게는 이만큼 비참한 전쟁도 없었습니다만.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한국 병합(*)입니다. 국제적으로도 인지되었다고 말을 하지만, 문제는 그 후 일본의 정책을 보면, 타 민족과의 관계 만드는 법에 대해서는 정말로 무지한 나라라는 것을 증명한 것과 같습니다. 민족의 긍지가 얼마나 강한 것인지를 헤아리지 않았고, 정확한 정치 책략도 전혀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편 전쟁입니다. 일본인으로 하여금 근대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게 하여, 메이지(明治) 유신을 촉진한 점에서는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금 일본인은, 일찍이 조선인이나 중국인에게 아픔을 준 사실을 그다지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인간은 역사를 바탕으로 살아갑니다. 자연스러운 교류를 위해서도, 잊지 말고 알아 두어야 할 것은 있습니다.

(인터뷰: 후쿠다 히로키(福田宏樹))

*한국에서는 병합 조약을 인정하지 않으며 ‘강점’이라고 표현한다.

▼한도 가즈토시 약력

1930년 출생. “문예 춘추” 편집장 등을 역임. 역사 연구로 왕성한 집필 활동 중이다. 『쇼와역사(昭和史)』(헤이본사(平凡社)) 등 다수의 저서.

▼한도 가즈토시 작가가 선택한 ‘10대 사건’

①중일 전쟁

②러일 전쟁

③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패배

④만주 사변과 만주국 건설

⑤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

⑥청일 전쟁과 타이완 할양

⑦한국 전쟁

⑧한반도(朝鮮半島)의 분단

⑨일본의 한국 병합

⑩아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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