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랍 인질 5번째 육성 공개 가족들 “신원 확인 않겠다”

  • 동아일보
  • 입력 2007년 8월 6일 03시 05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세력에 납치된 한국인 인질의 육성이 또다시 공개됐다.

그러나 한국의 피랍자 가족들은 반응을 일절 보이지 않으며 냉정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다.

AFP통신은 4일 아프간 칸다하르 주재 특파원이 탈레반에 억류된 한국인 여성 인질 1명과 통화한 내용을 공개했다.

이 통신은 오후 9시 45분(한국 시간)에 “인질이 영어와 현지 다리어로 통화했으며 이름을 싱 조힌(Sing Jo-Hin)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통신은 3시간 뒤인 5일 오전 1시 2보(報)에선 이름을 삭제했다.

이 여성 인질은 다리어를 사용한 점으로 보아 현지에서 합류한 가이드로 보이지만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 통신에 따르면 이 인질은 “그들(탈레반)이 우리를 죽이겠다고 위협한다”며 울먹였고 “전쟁(인질 구출을 위한 군사작전을 말하는 듯)은 안 된다. 전쟁이 나면 우리는 정말 위험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인 인질의 육성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5번째로 이번이 가장 절박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다른 인질 3명과 함께 있다고 밝힌 이 여성 인질은 “우리 대부분이 아프다. 기후에 적응하지 못해 아무것도 먹을 수 없고 잠을 잘 수도 없다”고 말했다.

카리 유수프 아마디 탈레반 대변인은 4일 DPA통신에 “인질들이 잘못 치료받아 숨질 경우 탈레반이 비난받을 수 있어 진료 요청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이날 육성 공개에 대해 경기 성남시 분당구 피랍자가족모임 사무실에 모인 가족들은 “가슴이 아프지만 신원을 확인하지 않을 것”이라며 애써 궁금증을 참았다.

이 모임의 차성민(30) 대표는 “납치세력의 전략에 휘말릴 수 있으므로 앞으로 육성 공개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가족들도 무척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만 반응을 보인다고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기 때문에 신원 확인 등의 조치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피랍자 가족들은 이날 미국과 아프간 정상회담의 결과를 놓고 우려 섞인 보도가 잇따르자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서명화·경석 씨 남매의 아버지 서정배(57) 씨는 “우리 아이들이 풀려날 수 있는 회담이 돼야 한다”면서 “해(害)가 되는 회담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으며 생명의 귀함을 생각하는 회담이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피랍자 가족 16명은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국 이슬람 서울중앙성원을 방문해 이슬람교계의 지원을 요청하는 내용의 호소문을 전달했다.

가족들은 이행래(70) 원로 이맘(종교지도자) 등을 만나 “이슬람교나 기독교 모두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며 무사귀환을 위해 나서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같은 날 오전 11시경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는 심성민 씨의 영결식이 유가족과 교회 관계자, 각계 인사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영결식이 끝난 뒤 심 씨의 시신은 서울대병원에 의학연구용으로 기증됐다.

故심성민 씨 ‘눈물의 영결식’4일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심성민 씨의 영결식에서 장례식장을 떠나는 영정을 지켜보던 유족들이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심 씨의 시신은 이날 의학연구용으로 병원에 기증됐다. 성남=김재명 기자
故심성민 씨 ‘눈물의 영결식’
4일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심성민 씨의 영결식에서 장례식장을 떠나는 영정을 지켜보던 유족들이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심 씨의 시신은 이날 의학연구용으로 병원에 기증됐다. 성남=김재명 기자

한편 피랍자 가족들은 인질 석방을 호소하는 내용의 손수제작 동영상물(UCC)을 만들어 다음 주 국내외 UCC 사이트에 배포하기로 했다.

한국어와 영어 아프간어로 제작될 이 UCC에는 인질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가족들의 인터뷰와 호소문, 피랍사태 이후 하루하루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담을 예정이다.

전 창 기자 jeon@donga.com

성남=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한국 여성 인질 AFP통신과 통화 내용

“그들(탈레반)이 우리를 위협합니다. 우리를 죽이겠다고 말해요. 죽고 싶지 않습니다. 집에 가고 싶어요. 얼마나 오래 버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아픈 상태입니다. 몸 상태가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어요. 구해 주세요. 우리는 무고한 사람들입니다.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이곳에 왔는데 이제는 우리 모두가 아픕니다. 기후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어요. 전쟁(군사작전)은 안 됩니다. 만일 전쟁이 나면 우리는 정말 위험해질 거예요. 우리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고 잠도 잘 수 없습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 우리 석방을 위해 노력해 주길 바랍니다. 저는 다른 3명의 인질과 함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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