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협상 압박 - 내부 단속 이중효과 노려

  • 입력 2007년 8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한국인 인질을 잡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세력은 왜 배형규(42) 목사에 이어 심성민(29) 씨를 살해하는 잔혹한 행동을 저지른 것일까.

일단은 교착 국면에 접어든 아프간 정부와의 협상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희생양을 만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탈레반 수감자와 인질 교환’ 요구를 일축해 온 아프간 정부에 ‘인질 살해’라는 초강수로 압력을 넣으려 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몸값을 받고 인질들을 석방하자는 탈레반 내부 온건파를 단속하고 결집력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노렸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탈레반이 추가 살해를 실행한다면 ‘여성이나 어린이는 살해하지 않는다’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다음 희생자가 남성이 될 것이라는 점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다. 그러나 왜 심 씨였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전날까지만 해도 심 씨가 속해 있는 그룹(이지영 김경자 김지나)이 가장 자유롭고 대우를 잘 받는다는 분석이 나왔다. 4명 중 3명이 NHK 등과 통화를 한 데다 김지나 씨가 “(식사를 잘 못하지만) 병에 걸리지는 않았다”고 상황을 설명했기 때문.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런 관측은 ‘사실’이 아니라 이들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희망’에 바탕을 둔 것이었음이 판명됐다.

김 씨의 발언으로 미루어 볼 때 심 씨가 배 목사처럼 건강상 이유로 처형됐을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그가 두 번째 희생자가 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분석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이 중 하나는 그의 종교 활동이 문제가 됐을 개연성이다.

탈레반 대변인인 카리 유수프 아마디가 인질들의 종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던 발언을 뒤집고 지난달 30일 “한국인은 아프간인을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려고 왔다”며 종교 문제를 거론한 점이 이런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탈레반은 인질들로부터 빼앗은 캠코더, 디지털카메라 등 소지품을 통해 샘물교회 청년 담당 교사인 심 씨를 배 목사 다음의 중요 인물로 파악했을 수 있다. 또 심 씨의 소지품에서 탈레반을 자극하는 물건이나 서적 등이 발견됐을 가능성도 있다. 추측이지만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심 씨가 억류기간 중 종교적 행동을 해 탈레반의 눈에 거슬렸을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와 함께 피랍 상태에서 심 씨가 일본 NHK와 인터뷰했던 점이 불리하게 작용했을 수도 있다. 언론의 주목을 받은 그를 살해할 경우 국제사회가 받을 충격이 더 크리라는 점을 탈레반이 노렸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젊고, 육군 중위로 2003년 예편한 심 씨가 탈출 시도나 반항을 하다가 탈레반에 ‘요주의 인물’로 찍혔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한편 두 번째 희생자가 나오면서 탈레반이 앞으로 어떤 추가 행동을 벌일지도 주목된다. 탈레반은 배 목사를 살해한 뒤 언론과 인질들의 통화를 허용했고, 심 씨가 살해된 직후에는 인질들의 동영상을 방영하는 등 치밀한 언론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탈레반은 정치적 목적을 가진 극단적 테러조직으로 교묘한 언론 플레이를 펼친다는 점에서 수십 건의 납치 살해 사건을 자행한 이라크의 ‘알 카에다’나 팔레스타인의 ‘이슬람군대’와 유사하다. 이에 비춰 볼 때 탈레반이 자신들의 요구조건이 관철되지 않으면 알 카에다처럼 ‘인질 살해 동영상 방영’ 등 극단적 수법을 동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전창 기자 je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