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금만 삼킨 ‘먹튀 기업’ 돈 물어내라”

  • 입력 2007년 6월 1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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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증권회사 인스티넷은 2004년 뉴저지 주에 운영센터를 설립하면서 주정부에서 50만 달러의 보조금을 받았다. 3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조건이었다. 2년 후 인스티넷은 기대했던 만큼의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한 채 이 지역에서 철수했다. 뉴저지 주는 인스티넷에 “받은 돈을 물어내라”고 요구해 보조금 원금의 90%를 받아냈다. 기업유치 계약 때 ‘환수 조항(clawback provision)’을 포함시킨 덕분이었다.

각종 지원책을 내세우며 기업 유치에 열을 올렸던 미국 도시들이 주머니 끈을 졸라매고 있다. 당초 약속한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 활성화 목표를 지키지 못한 기업들에 제공받은 각종 지원을 물어내라고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에서 기업유치 조건에 환수 조항을 포함시키고 있는 곳은 20여 개 주(州)에 이른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11일 보도했다. 1994년 5개 주에서 크게 늘어난 것. 2002년 이후 버지니아 주는 지역경제 기여도가 신통찮은 기업들에서 1000만 달러를 돌려받았다. 지난 2년 동안 미네소타 주가 거둬들인 환수금도 400만 달러에 이른다.

막대한 지원금을 앞세운 기업유치 경쟁은 1970년대 미시시피 등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불붙기 시작했다. 현금 보조금을 주거나 재산세를 감면해 주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다. 2004년 델 컴퓨터는 노스캐롤라이나에 2억6000만 달러짜리 공장을 지으면서 주정부로부터 이보다 더 많은 3억 달러의 지원금을 얻어내기도 했다.

시민단체 굿잡스 퍼스트의 그레그 르로이 사무국장은 “최근 증가하는 환수 요구는 세금이 잘 쓰이고 있는지 감시하는 납세자의 눈초리가 매서워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2005년 노스캐롤라이나의 한 시민 법률단체는 지원금을 대준 델 컴퓨터의 지역경제 기여도를 감시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주정부를 고소하기도 했다.

일부 도시는 사후 환수 대신 아예 지원금을 할부 방식으로 집행해서 지역경제 기여 목표를 지키지 못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지원금을 중도에 끊는 방식을 쓰고 있다. 또 경쟁적으로 지원책을 늘리다 보니 유치 기업에만 좋은 일이라는 인식이 생겨나면서 아예 도시들이 단합해 경쟁 자제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

물론 환수 요구가 쉬운 것만은 아니다. 기업유치 계약 때 시장 상황이 좋지 않으면 지역경제 기여도가 낮더라도 지원금을 환수할 수 없다는 예외조항을 삽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기업들은 지원책보다는 노동력의 교육수준이나 인프라 시설이 더 중요한 투자조건인데 경제기여 효과가 당초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지원금을 물어내라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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