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규탄하는 일본계 美정치인, 위안부 결의안 하원제출

  • 입력 2007년 2월 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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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姓)은 혼다입니다. 이보다 더 일본계임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이름은 없을 겁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타클래라 카운티가 지역구인 마이클 혼다 의원은 미 하원의 유일한 일본계 의원이다. 그는 2001년 9·11테러 직후 미국 내 무슬림들이 적대적인 시선을 견디다 못해 이름을 서양식으로 바꾸려 하자 이를 극구 만류했다. 타고난 핏줄을 바꿀 수도 없고, 바꿔서도 안 된다는 설명이었다. 그처럼 자신의 핏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혼다 의원이 일본의 일본군위안부 만행을 강력히 규탄하는 결의안을 작성했다. 그는 동료의원 6명의 공동서명을 받아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하원에 결의안을 제출했다.》

지난해 9월 하원 국제관계위원회를 통과한 뒤 폐기된 레인 에번스 의원 주도 결의안의 바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에번스 의원은 파킨슨병에 걸려 지난해 말 정계를 은퇴했다.

“에번스 전 의원이 펼친 노력의 횃불을 이어받게 돼 영광”이라며 제출한 혼다 의원의 결의안은 내용이 한층 강력하다. 결의안은 군위안부 만행의 역사적 책임을 명백하게 인정하고 사과할 것을 일본 정부에 촉구하면서 “공식 사과는 일본 총리의 공개성명을 통해 이뤄져야만 한다”고 못 박았다.

혼다 의원은 이날 결의안과 함께 제출한 낸시 펠로시 의장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성명서에서 “이 결의안의 목적은 일본을 망신 주고 때리려는 게 아니다”라며 “잔혹한 만행을 견뎌 내고 살아남은 여성들에게 정의를 되찾아 주는 것이 이 결의안의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스스로 일본계이면서 자신이 일본의 군위안부 만행 규탄 결의안 채택을 주도하는 이유를 혼다 의원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미국 의회는 1988년 시민자유법을 제정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내 일본계 미국인들을 강제수용소에 보냈던 것을 공식 사과한 바 있다. 강제수용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사람으로서 결코 과거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국가 차원의 행동(사과)을 통한 화해가 영속적인 효과를 갖는다는 것을 나는 직접 경험했다. 이 결의안은 화해를 위한 것이다.”

혼다 의원은 1941년 캘리포니아 주에서 태어났다. 바로 그해 12월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했다. 갓난아기였던 그를 비롯한 온 가족은 창문이 가려진 차에 태워져 낯선 곳으로 끌려갔다. 훗날 그의 부모는 몇 차례나 당시의 일을 얘기하곤 했다고 혼다 의원은 회상했다. 그의 가족은 콜로라도 주의 강제수용소에서 생활하다 1953년에야 풀려나 딸기농장에서 소작농으로 일했다.

과학교사 출신으로 공립학교 교장을 두 번 지낸 뒤 2000년 하원의원에 당선돼 이번이 4선째인 혼다 의원은 주의회 의원 시절에도 군위안부 및 일본의 전쟁 범죄 사과 요구 결의안을 낸 바 있다.

이번 결의안이 하원 본회의에서 채택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톰 랜토스 외교위원장과 펠로시 의장은 결의안을 지지하지만 일본은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를 지낸 밥 마이클 씨와 마크 폴리 전 하원의장 등 거물급 로비스트들을 내세워 물밑 외교전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혼다 의원은 이날 성명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호소했다.

“군위안부의 멍에를 안고 살아온 얼마 안 남은 생존자들이 지금 스러져 가고 있습니다. 이들이 조금이라도 마음의 평화를 얻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미국은 정의를 갈구하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으며 그들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합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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