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매니저 꿈꾸던 청년, 이슬람 전사돼 세계최대테러 모의

  • 입력 2006년 11월 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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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친구들이 기억하는 디런(사진)은 열심히 공부하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그는 조용한 편이라 친구들의 눈에 소심하게까지 비쳤다. 그 또래 아이들이 대개 그렇듯 옷차림에 관심이 많았고 유행 가요를 즐겨 들었다. 친구들에게 밝힌 장래 희망은 ‘호텔 매니저’였다.

16세 때 고등학교를 마친 디런은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는 여행사, 호텔 등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직장을 찾아다니며 일을 배웠다. 적어도 스무 살 때까지 그는 호텔 매니저가 되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스무 살 무렵 그는 인생의 결정적 전기를 맞이했다. 이슬람교를 알게 된 것. 힌두교도였던 그는 개종을 택했다. 그 뒤 그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34세가 된 지금 디런 배럿 씨는 최고 40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신세가 됐다. ‘사상 최대의 테러를 모의했다’는 어마어마한 죄목이다. 2004년 체포돼 7일 40년형을 선고받은 배럿 씨는 평범한 소년이 이슬람 전사로 변신하는 전형적 과정을 거쳤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배럿 씨의 사례를 통해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청년들에게 접근하는지 알 수 있다”고 전했다.

인도에서 태어나 1세 때 부모와 함께 영국으로 이주한 배럿 씨는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은행원, 어머니는 슈퍼마켓 점원으로 일했다.

20세 때 접한 이슬람교가 그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과격한 설교로 체포돼 복역 중이던 이슬람 성직자 아부 함자의 설교를 듣게 된 것. 개종한 그는 곧 무자헤딘이라는 단체와 지하드(성전·聖戰)에 대해 알게 됐다. 시간이 날 때마다 ‘억압당하고 있는 무슬림을 돕는 방법’에 대해 사람들과 토론을 벌였다.

1995년 그는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카슈미르 등지를 방문하기 위해 영국을 떠났다. 부모에겐 북부 지역으로 일하러 간다고 둘러댔다. 이미 가족은 염두에 없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알 카에다와 접촉했다. 카슈미르에선 테러리스트 훈련 캠프에 합류해 무기 사용법, 폭탄 취급법, 독약 제조법 등을 배웠다.

영국으로 돌아온 뒤 그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영국 내 테러조직의 최고위층까지 올라갔다. 경찰 관계자는 “우리가 지금까지 파악한 인물 가운데 가장 상위급 테러리스트”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가 체포되지 않았다면 수천 명이 희생될 뻔했다”면서 “알 카에다로선 숙련되고 헌신적이고 무자비한 테러리스트를 한 명 잃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미국의 뉴욕과 워싱턴, 영국의 런던을 동시 다발로 공격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테러를 꾸며 왔다고 법정에서 털어놨다. 런던에선 특히 템스 강 하구를 폭파해 런던을 물바다로 만드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드러났다.

평범하던 소년에서 테러리스트로 변신한 뒤 그가 쓴 메모에는 ‘다리를 폭파하는 방법’ ‘보툴리누스균을 배양하는 방법’ 등이 적혀 있었다.

또 다른 메모도 발견됐다.

‘무자헤딘과 함께 훈련받으면서 교실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을 발견했다. 알라의 이름으로 살고 알라의 이름으로 죽는 것, 그것이 이슬람이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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