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사태 중동전 번지나

  • 입력 2006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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死地 탈출 레바논 남부 카프라 지역 주민들이 지난달 31일 폐허가 된 마을을 뒤로한 채 피란길에 오르고 있다. 이스라엘 공군은 이날 48시간 동안 공습을 중단한다는 약속을 깨고 레바논 남부 지역을 폭격했다. 카프라=EPA 연합뉴스
死地 탈출 레바논 남부 카프라 지역 주민들이 지난달 31일 폐허가 된 마을을 뒤로한 채 피란길에 오르고 있다. 이스라엘 공군은 이날 48시간 동안 공습을 중단한다는 약속을 깨고 레바논 남부 지역을 폭격했다. 카프라=EPA 연합뉴스
지난달 31일 무차별 공습으로 민간인 50여 명의 희생자를 낸 ‘카나 참사’ 후 이스라엘 정부는 48시간 공습 중단을 선언했지만 그 직후 레바논 동부에 공습을 재개했고 1일에는 지상전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맞서 시리아는 전군에 비상경계령을 내렸고, 이란은 레바논 지원을 선언하는 등 또 한 차례의 중동전쟁으로 확산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물러설 기미 안 보이는 이스라엘=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는 1일 “정전은 없다. 이스라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아미르 페레츠 국방장관도 “공격의 강도와 범위를 모두 확대할 것”이라며 기존의 강경 태도를 유지했다.

이스라엘은 이날 공습 중단을 약속한 레바논 ‘남부’를 피해 레바논 동부와 시리아로 가는 길목을 공습했다. 페레츠 국방장관은 “시리아로부터 레바논으로 무기를 운송하는 모든 차량을 공격 목표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은 또 지상군에 레바논 국경으로부터 30km 지점인 리타니 강까지 진격해 헤즈볼라를 소탕하라고 명령했다. 국제 평화유지군이 개입하기 전에 ‘완충지대’를 최대한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 1만5000명 규모의 지상군이 레바논에 투입될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전쟁으로 번지나=시리아는 이날 레바논 사태가 시리아까지 확대될 경우에 대비해 전군에 경계령을 발령했다고 아랍권 언론들이 전했다.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우리가 훈련에 흘려 온 땀방울을 핏방울로 바꿀 때가 올 것”이라며 전군에 전투 준비 태세 강화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누셰르 모타키 이란 외교장관도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 이후 처음으로 레바논을 방문해 “레바논의 뜻과 계획에 적극 동의한다”며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이란의 이슬람 지도자인 아야톨라 아마드 자나티는 이슬람 국가들에 레바논에 대한 무기 지원을 호소했다.

외신들은 레바논 사태가 점점 이스라엘 대 이란·시리아의 대리전 양상으로 번지고 있으며 중동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고 우려했다.

▽국제사회, 이스라엘 맹비난=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카나 참사에 대해 이스라엘을 비난하며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했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이스라엘의 공격은 전쟁 범죄”라고 규정지었고, 유럽 언론들도 비난 일색이다. 평소 이스라엘 편에 섰던 독일 일간지 빌트도 “카나 사태는 이해할 수 없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외교부 웹사이트에 헤즈볼라 무장세력이 카나 마을의 건물들 뒤편에서 로켓포를 발사하는 영상을 공개한 뒤 “헤즈볼라가 민간인을 ‘인간 방패’로 활용했다”며 참사의 책임을 헤즈볼라에 돌렸다.

▽이스라엘은 왜?=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물러서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해 있다.

우선 3주에 걸친 공격에서 아무런 전과도 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납치된 병사 2명은 여전히 헤즈볼라의 수중에 있다. 헤즈볼라의 기세도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헤즈볼라의 반격으로 자국 민간인 희생자가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정전을 선택한다면 소득 없이 상황은 원점으로 돌아간다. 이번 사태를 통해 군 작전 능력을 검증받고 있는 올메르트 총리도 지금 물러서면 큰 타격을 입게 된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다국적군 파병 요청한다면…▼

이스라엘-레바논 분쟁 해결을 위한 다국적군 파병이 논의되고 있지만 어느 나라가 참여할지 불투명하다.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에 병력이 묶여 있어 여력이 없다고 발을 뺐다.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가 웹사이트에서 다른 국가들의 속사정과 파병 전망을 짚어 봤다.

▽이집트=미국과 이스라엘은 ‘과격 아랍’과 ‘온건 아랍’ 분리 차원에서 이집트의 파병을 기대한다. 장애물은 국민 여론.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매우 조심스럽다. 결국 국제적 압력에 굴복하겠지만 미국에 ‘지나친 기대는 말라’는 메시지를 보낼 것이다.

▽이탈리아=국제적 명성을 높일 기회인 데다 이라크 철군 이후 악화됐던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는 올 4월 총선에서 간신히 승리한 처지여서 상원의원 한두 명이 반대하면 난망이다. 다만 노회한 로마노 프로디 총리가 있어 잘 헤쳐 나갈 것이다.

▽터키=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데다 이스라엘과 긴밀한 군사관계를 맺고 있다. 다만 터키는 서방의 ‘종복’처럼 비치길 원치 않는다. 따라서 파병의 반대급부로 원활한 유럽연합(EU) 가입을 약속받는 조건 아래 파병에 동의할 것이다.

▽프랑스=과거 레바논을 지배했던 프랑스는 레바논과 이스라엘 양쪽의 신뢰를 받는 유일한 국가로서 다국적군의 지휘권을 행사할 적임자로 꼽힌다. ▽독일=나치 독일의 유대인 탄압 역사를 보상하는 차원이 될 수 있다. 다만 과거사는 ‘양날의 칼’이다. 이스라엘에 총구를 겨눠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기 때문. 따라서 독일은 일단 뒷전에 물러서 있다가 파병에 동참하는 형식을 취할 것이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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