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침해 논란’ 쿠바 美관타나모 수용소를 가다

  • 입력 2006년 5월 1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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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관타나모 수용소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10일엔 테러와의 전쟁에서 변함없이 미국 측을 지지하던 피터 골드스미스 영국 법무부 장관까지 나서 ‘자유와 정의의 횃불이라는 미국의 역사적 전통’에 비춰 볼 때 관타나모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과연 ‘관타나모의 진실’은 뭘까.》

쿠바 속의 미국 땅으로 불리는 동남쪽 카리브 해변의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 1일 오후 6시 반, 미 플로리다 주 포트로더데일 공항을 떠난 20인승 소형 비행기는 약 3시간 만에 기지 내 비행장에 착륙했다.

국제사면위원회가 ‘우리 시대의 수용소 군도’라고 비판했던 관타나모 수용소가 있는 곳이다. 수용소를 관장하고 있는 미 육해공군 및 해병대 합동 태스크포스(JFT-GTMO)의 승인을 받아 1일부터 4일까지 해군기지와 수용소 시설을 둘러봤다.

관타나모 수용소는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체포한 사람들을 수용하고 있는 시설 가운데 유일하게 언론의 방문 취재를 허용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전쟁 초기에 탈레반과 알 카에다 조직원 20명을 태운 수송기가 기지에 처음 착륙한 것은 9·11테러 발생 4개월 뒤인 2002년 1월 11일.

그날 이후, 카리브 해변의 한적한 리조트를 연상시키는 해군기지의 일부는 ‘인권의 블랙홀’이라는 비판의 대상으로 변했다.

기지 동북쪽 벌판에 있는 캠프 X-레이는 2002년 4월 말 이후 사용하지 않아 잡초만 무성한 ‘역사적 유물’로 변해가고 있었다. 수용소에는 기지 동남쪽에 배치된 델타 1∼5와 이구아나로 불리는 6개의 캠프가 있었다. 각 캠프는 수용소 규칙에 협조하는 정도에 따라 수감자들을 분산 수용하고 있었다.

미 인디애나 주 연방교도소를 모델로 최첨단 보안시설을 갖춘 ‘캠프 델타 5’는 이른바 ‘비협조자’ 50여 명을 특별 관리하고 있다.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델타 5’의 중앙에는 모니터실이 설치돼 독방 수감자들의 행동을 24시간 감시할 수 있도록 돼 있었다. 이곳의 수감자들은 흰옷을 입은 ‘협조자’들과 달리 오렌지색 옷을 입는다.

‘캠프 델타 4’는 규칙에 잘 따르는 협조자들을 수용하는 시설. 큰 방을 10명이 공동으로 사용하고 식사도 같이한다고 수용소 관계자는 설명했다.

수용 시설은 5중, 6중의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수감자들이 사용하는 방을 보기 위해선 정문에서부터 9개의 문을 통과해야 했을 정도. 철조망보다 높은 초소에는 총을 든 경비병들이 배치돼 있어 탈출은 불가능해 보였다.

가로 1.8m, 세로 2m 크기의 독방에는 한쪽에 좁은 침대가 있고 수세식 변기와 작은 세면대도 설치돼 있었다.

수용소 측은 수감자들에게 미군 장병이 먹는 것과 같은 식사를 제공하고 닭장처럼 생긴 철망 속에서 하루 2시간 정도 운동도 허용한다고 밝혔다. 꽤 넓은 운동장에는 농구대, 배구 코트, 축구 골대가 설치돼 있었고 캠프 4에서는 탁구대도 볼 수 있었다.

이미 석방됐거나 현재 수감된 사람은 17개 언어를 사용하는 42개국 출신의 760여 명. 260∼270명이 이미 석방됐거나 본국으로 송환됐고 현재 남아 있는 사람은 약 490명이다.

남아 있는 사람 가운데 133명이 2004년 12월부터 1년 동안 진행된 수용소 자체 행정심사로 석방 또는 송환 대상자로 결정됐다고 수용소 측은 밝혔다.

미국은 이들 대부분이 알 카에다나 탈레반 조직원 또는 지원자이거나 미군에 적대행위를 한 사람들이라며 ‘전쟁 포로’가 아닌 ‘적 전투원(Enemy Combatant)’으로 규정했다. 제네바 협약에 따른 전쟁 포로 대우를 할 수 없다며 정상적인 재판 절차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두 차례에 걸쳐 공개된 수감자 신문 기록에 따르면 아프간과 파키스탄에서 보상금 때문에 붙잡혀 미군에 넘겨졌거나 지방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지 않아 체포됐다고 주장하는 수감자도 적지 않다. 알 카에다의 폭파 사건에 사용된 카시오 모델 F-91W 시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 체포된 이유인 사람도 5명이나 된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2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군이 국제협약상 ‘고문’으로 볼 수밖에 없는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학대와 신문 기법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물론 미 국방부는 수감자들이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거짓 주장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전체 수감자 가운데 군사위원회 재판에 기소된 사람이 10명뿐이라는 사실은 국방부의 주장을 신뢰하기 어렵게 만든다. 수용소 관계자는 20여 명이 추가로 기소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700명 이상을 기소하지 않은 것은 유죄 판결에 필요한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미국이 인권단체들은 물론이고 동맹국인 영국의 일부 장관까지 나서 폐쇄해야 한다고 비판하고 있는 수용소를 언제까지 운용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이런 말을 했다.

“관타나모 수용소를 열어 놓으면 폐쇄하는 것보다 더 많은 미국인이 죽게 될 것임을 나는 확신한다.”

관타나모=권순택 특파원 maypole@donga.com

▼관타나모 기지는…1903년 쿠바서 영구임차▼

관타나모 수용소는 쿠바 동남쪽 해변에 있는 미국의 관타나모 해군기지 안에 있다.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쿠바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한 미국은 1903년 2월 쿠바와 연 사용료 4085달러(계약 당시에는 미국 금화 2000개)에 기지를 영구 임차했다. 임대차 계약 당시의 토마스 에스트라다 팔마 쿠바 초대 대통령은 미국 시민권자였다.

1959년 쿠바 혁명 후 피델 카스트로 정부는 미국에 기지 반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양측이 동의해야만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는 조항 때문에 미군이 계속 사용하고 있는 상태.

미국은 매년 임차료를 수표로 보내고 있지만 쿠바 정부는 미국이 불법으로 점령하고 있다면서 수표의 현금화를 거부하고 있다. 항의 표시다.

관타나모 해군기지는 해외에 있는 미군 기지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넓이 116.5km²의 해군기지는 남쪽 해안을 제외한 쿠바와의 경계선에 총연장 27.4km의 철책이 처져 있다.

기지에는 군인과 가족, 군 계약업자들, 민간인 등 약 8000명이 살고 있다. 미 해군의 작전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 왔으며 1990년대 초반에는 아이티와 쿠바 난민들의 피난처 역할도 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는 코소보 난민들을 기지에 수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기도 했으며 1990년대 초에는 한때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환자 수용시설이 운영되기도 했다.

관타나모 해군기지는 톰 크루즈와 데미 무어가 주연한 영화 ‘어 퓨 굿 맨’의 배경으로 일부 소개되기도 됐다.

쿠바의 독립운동가 호세 마르티의 시가 노랫말이 된 유명한 쿠바 민요 ‘관타나메라’는 관타나모의 시골 여인을 노래한 것이다. 관타나모 수용소의 실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관타나모 가는 길’은 2월 베를린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관타나모=권순택 특파원 maypole@donga.com

▼관타나모 해군기지와 수용소 일지▼

- 1898년 6월 10일: 미국 해병대 쿠바 상륙

- 1903년 2월 23일: 미-쿠바 관타나모 기지 임대차 계약

- 1959년: 쿠바 혁명 후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 미국 철수 요구

- 2002년 1월 11일: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체포된 20명, 기지에 첫 도착

- 2005년 5월: 관타나모 수용소 코란 모독 행위 파문

- 2006년 2월 16일: 유엔 인권위원회, 수용소 실태 보고서 발표하고 폐쇄 촉구

- 2006년 3월 3일: 미 국방부, 수감자 심사 기록(약 5000쪽 분량) 공개

- 2006년 4월 3일: 미 국방부, 수감자 기록(약 2000쪽 분량) 추가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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