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안인해]아르빌에서 본 ‘이라크 투자 봉쇄’

  • 입력 2006년 3월 6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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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툰부대의 교대 병력 300여 명과 함께 이라크 북부 아르빌 지역을 방문했다. 김덕수 사물놀이패도 함께 방문해 공연했는데 마침 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대통령의 부인이 관람석 옆자리에 자리해 그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대통령 부인은 사물놀이 관람 후 “이라크의 전통 공연과 이상하리만큼 비슷하다”며 친근감을 나타냈다. 또 자이툰부대 대원 등 한국인은 이라크의 문화를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이어 이라크의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한국이 참여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다고 말했다.

자이툰부대가 아르빌 재건을 위해 기울인 그동안의 노력은 현지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인상을 심는 데 성공하고 있다. 아르빌의 각 마을에서 진행하고 있는 ‘그린에인절 작전’은 우리의 새마을운동을 연상시켰다. 이 작전은 도로 하수도를 건설하고 마을 환경을 개선하는 등 각 마을에 따라 필요한 숙원사업을 해결해 주는 종합적인 대민 지원사업. 기술교육센터도 운영하며 이 지역 쿠르드인들의 자활을 돕고 있었다.

작전 항목 중에는 부대원과 주민들의 화합을 위한 마을 축제 개최도 있었다. 부대원과 주민들이 함께 줄다리기도 하고, 쿠르드족의 전통 춤(초피 댄스)도 췄다. 쿠르드족 어린이들은 어느새 ‘둥글게 둥글게…’ 등 한국 동요를 부르며 춤을 췄다. 축제가 열리는 곳의 인근 건물 지붕에 배치된 저격수와 3중으로 에워싼 경호만 아니라면 시골의 흥겨운 운동회 모습 그대로였다.

인구 약 400만 명인 이 지역은 풍부한 노동력과 석유, 가스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영농지는 비옥하며 이라크 타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치안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주변국과의 물류체계도 비교적 양호하다.

그러나 전기, 통신망 등 사회기반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고 주택 등 숙박시설은 열악하다. 금융시장이 제대로 발전하지 않아 기초적인 수출 서비스도 제한받고 있다. 이 때문에 쿠르드인들은 재건 과정에서 한국의 투자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탈라바니 대통령은 “한국 기업이 이라크에 투자하면 특혜를 줄 수 있다”고 공언했다고 한다.

이라크 정부는 전후 복구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아르빌에서 2004년부터 매년 ‘이라크 재건 박람회’를 개최하고 있다. 정보 통신, 교통 수송 서비스, 관광 분야 등에 전방위의 투자 유치를 원한다. 한국의 기술 수준이라면 충분히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사업들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 정부는 안전을 이유로 이라크에 대한 민간인 진출을 금지하고 있다. 인질로 잡혀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김선일 씨 사건 이후 이라크 직접 투자 기회가 봉쇄돼 있는 것. 그렇다 보니 아르빌 지방정부가 발주한 아파트 공사의 대부분은 터키 기업이 맡고 있다.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의 휴대전화 사업은 중국 기업에 발주되었다.

이제는 그동안의 희생이 값지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이라크에 활발한 투자를 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 정부는 이라크 정세를 정확히 판단하여 민간 분야의 진출 시기를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라크에서는 많은 기회가 한국인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린에인절 작전 마을 축제의 마지막 순서는 태권도 시범이었다. 자이툰부대 장병이 멋진 발차기로 장대에 높이 매달려 있는 박을 깨뜨리자 캐치프레이즈가 쓰인 긴 천이 펼쳐졌다. ‘우리는 친구(We are Friends).’ 양국이 진정한 우정을 완성하려면 한국이 이라크 경제 발전에 동참해야 하지 않을까.<아르빌에서>

안인해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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