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가 커밀라 선택한 이유는 ‘미인 왕비보다 조언자 필요’

  • 입력 2005년 4월 28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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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찰스 왕세자는 아름다운 다이애나를 버리고 커밀라 파커볼스 씨를 선택했을까?”

영국의 찰스 왕세자와 커밀라 씨의 결혼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한 대목이다. BBC는 27일 역사적으로도 왕의 애인 선택 기준은 미모가 아니라 대화 상대였다며 커밀라 씨의 선배 격인 유럽 왕들의 정부(情婦)에 대한 뒷얘기를 전했다.

왕실 간의 정략으로 사랑 없는 결혼을 하던 시절. 초상화만 보고 결혼을 결정했다 실망하는가 하면 친정을 배경으로 들들 볶기만 하는 왕비에 싫증난 왕들은 애인을 두는 것으로 위안을 받곤 했다.

대부분 아름다웠지만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영국 조지 1세의 정부들은 한 명은 비쩍 말랐고 다른 한 명은 작고 뚱뚱해 백성들이 왕의 독특한 취향에 실망했을 정도.

왕의 ‘애인 찾기’ 기준은 반드시 외모가 아니었던 것이다. ‘왕의 정부’의 저자 엘리노어 허먼 씨는 “왕들은 자신의 치세에 관해 절친한 누군가에게 묻고 싶어 했고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마음 편한 대화상대를 원했다”고 분석했다.

프랑스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퐁파두르 부인이 대표적. 그는 세월이 가면서 시들어가는 외모를 정신적 아름다움으로 대신했다. 왕의 친구이자 조언자로서 프로이센을 견제하기 위해 숙적 오스트리아와 손을 잡도록 뛰어난 외교 자문을 하기도 했다.

프랑스 앙리 2세의 정부였던 디안 드 푸아티에는 왕보다 20세 연상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 개신교에 마음이 기울었던 앙리 4세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가브리엘 데스트레의 결합은 종교전쟁을 끝내고 ‘낭트 칙령’을 반포하는 계기가 됐다.

물론 좋은 조언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왕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한 암투도 심했고 사치가 심해 국민의 분노를 사 쫓겨난 정부도 있었다.

허먼 씨는 커밀라 씨가 ‘성공한 정부’의 케이스에 속한다고 분석했다. 찰스 왕세자는 아름답지만 잔소리 많고 들들 볶는 다이애나 비보다 소탈하고 유머감각이 있으며 포용력 있는 커밀라 씨에게서 마음의 위안을 찾았으리라는 것.

이런 점에서 허먼 씨는 소심한 찰스 왕세자와 인정 넘치는 커밀라 씨가 잘 살 것이라고 예견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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