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아보니]타인에 의한, 타인을 위한 패션

  • 입력 2004년 7월 30일 19시 42분


“한국에 대한 첫인상이 어떤가요.”

아마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일 것이다. 동시에 가장 어려운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어떻게 짧은 시간 안에 한 나라에 대해서 그리 쉽게 파악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올 초 한국에 처음 도착해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면서 한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내게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자동차 색상이었다. 한국을 잘 모르는 외국인의 눈에는 ‘법으로 자동차 색상이 한정돼 있나’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비슷비슷한 색상이 주종을 이뤘다. 한국인들은 도로에 달리는 차들이 몇 가지 색상으로만 이뤄졌다는 사실을 잘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그러나 검은색 흰색 회색 등 무채색 일색의 자동차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는 모습이 내 눈에는 매우 신기했다.

나라마다 민족마다 선호하는 색상이 다르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다혈질적인 이탈리아 국민은 붉은색, 문화를 사랑하는 프랑스인들은 자유를 상징하는 파란색, 성실과 철저함으로 대변되는 독일 국민은 은색 계열을 좋아한다. 무채색을 선호하는 한국인들에게선 은은하고 겸손한 맛은 있지만 개성은 부족한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런 첫인상은 한국 생활에 익숙해지고 많은 한국 사람을 만나면서 바뀌게 됐다. 결정적인 계기는 무채색 일색인 자동차 문화와는 정반대인 한국인들의 현란한 패션 감각이었다.

세계적인 패션 도시로 파리 뉴욕 밀라노 등이 자주 거론된다. 그러나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도 서울에 와 보면 분명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한국 여성은 물론 남성들도 계절마다 변화하는 디자인과 색상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장소에 어울리는 의상을 연출할 줄 안다.

그러나 한국인의 패션은 자기표현이 세련되기는 했지만 유행에 너무 민감한 나머지 독창적이지 못하다. 화려하기는 하지만 일률적이고, 실용적이기보다는 과시적이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한국 여성들은 최신 패션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일정한 ‘규칙’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듯 서로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독일 사람들은 옷을 입을 때 실용성을 가장 먼저 고려한다. 편안한 의상에 목에는 볼펜이나 수첩을 걸고 가방을 둘러메거나 들고 다닌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런 모습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말끔하게 차려입는 한국인들의 패션 코드에는 ‘자신을 위한 만족’보다는 ‘타인의 취향’을 먼저 생각하는 의식구조가 숨어 있는 듯하다.

외모도 경쟁의 기준이 되는 시대다. 그러나 지나치게 다른 사람의 평가를 의식하는 옷차림은 적극적이지 못한 심리상태에서 출발한다.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면서도 세련되게 자신을 표현하는 한국인의 특징은 글로벌 시대에 한국인만의 독특한 미덕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여기에 독창적인 창조력만 더한다면 한국은 분명 세계의 리더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약력▼

1945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근교에서 태어났으며 즈볼레대에서 전기공학을 공부했다. 주로 독일에서 근무했으며 독일 시민권을 갖고 있다. 올 2월 한국에 왔다.

롤러프 스터컨 한국 알카텔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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