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만화 원작의 일본 영화 2편

  • 입력 2004년 6월 24일 19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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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검객 아즈미 대혈전(왼쪽). 사진제공 스폰지음양사2. 사진제공 시네파크
소녀검객 아즈미 대혈전(왼쪽). 사진제공 스폰지
음양사2. 사진제공 시네파크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일본 영화 두 편이 25일 개봉돈다. 이들 영화는 비장미와 진부함이 뒤섞인 독특한 정서를 보여주거나 일본 토착신앙을 SF적 상상력으로 풀어낸다. 국내 관객이 이런 문화적 차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소녀검객 아즈미 대혈전▼

에도 막부시대의 일본. 사부 지지이는 고아 10명을 거두어 살인병기로 거듭나게 한다. 이들의 임무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항하는 반란 세력의 수장을 암살하는 것. 사부의 명령에 따라 절친한 동료들을 제 손으로 죽인 뒤 최종적으로 선발된 아즈미 등 5명의 미소년(녀) 무사가 비정의 살육전에 나선다.

고야마 유의 만화 ‘아즈미’를 원작으로 한 ‘소녀검객 아즈미 대혈전’은 ‘잡탕’적 상상력으로 가득 찼다. 이 영화에서 시간과 공간의 배경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16세 소녀검객 아즈미는 스트레이트 파마 머리에 세일러 문을 연상시키는 미니스커트, 망토까지 둘렀다. 게다가 흰옷 차림에 빨간 장미 한 송이를 손에 들고 사춘기 소녀처럼 히스테리를 부리는 사이코 살인마 비조마루를 보면 ‘만화 같은 영화’인지 ‘영화 같은 만화’인지 헷갈린다.

이 영화는 한쪽에는 ‘비장함’, 다른 쪽은 ‘진부함’이라고 쓰인 고무줄을 양쪽으로 힘껏 잡아당겨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려는 것 같다.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피 분수를 뿜어내며 처절하고 멋있게 죽으려고 안달하지만, “힘을 합해 사명을 완수하라!”와 같은 판에 박힌 대사들과 때만 되면 등장하는 천둥 번개가 주는 상투성에 실소가 터져 나온다. 아즈미가 “내가 죽인 자들은 정말 나쁜 사람들일까”라며 킬러의 존재론적 고민을 뱉어내는 핵심 장면은 울지도 웃지도 못할 이런 분위기에 눌려 압사해 버린다.

아즈미가 홀로 200명의 적들을 처단하는 마지막 액션 시퀀스는 그 잔혹성과 규모면에서 의외의 수확이다. 여자 킬러가 ‘죽음의 88인회’를 단칼에 베어버리는 ‘킬빌 Vol.1’을 떠올리게도 한다. 하지만 어쩌랴. ‘잡탕’(엉망으로 뒤섞임)이 결코 ‘퓨전’(새롭게 융화됨)이 될 수 없듯 아즈미는 결코 ‘더 브라이드(우마 서먼)’가 될 수 없는 것을….

저예산 공포액션 ‘버수스’를 만들었던 기타무라 류헤이 연출. 18세 이상 관람가.

▼음양사2▼

일본 헤이안 시대. 일식(日蝕) 현상이 일어난 틈을 타 귀신이 출몰한다. 이들은 고관대작들을 습격해 입, 코, 다리를 뜯어먹는다. 사회 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백성들은 자신들의 병을 초인적 능력으로 고쳐주던 겐카쿠를 신으로 받든다. 후지와라 대신의 의뢰를 받은 미나모토 히로마사는 음양사(陰陽師) 아베노 세이메이를 찾아가 해결을 부탁한다.

이 영화는 지난해 국내 개봉한 ‘음양사’의 후속편. 궁중에서 길흉화복을 점치던 음양사를 소재로 한 이 영화의 전편은 일본 흥행에선 성공했지만 일본의 토착신앙과 전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한국에서는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2편은 1편의 음울한 분위기를 줄이고 컴퓨터그래픽을 늘려 스펙터클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2편은 1편에 미치지 못한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만화적 상상력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치환시키는 데 필요한 집중력이 부족하다.

고서(古書)를 뒤지던 세이메이가 과거 황실의 공격을 받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 ‘이즈모’라는 약소국과 이 사건이 관련된 사실을 밝혀내면서 영화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문법과 속도로 흘러가고자 한다. 하지만 전체 이야기는 구심점을 잃은 채 점점이 흩어지고 카리스마를 상실한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희화화된다. 긴장감과 리듬감이 증발해 버린 자리에 관객이 ‘도대체 뭐가 그렇게 심각한 거지?’ 하고 되묻는 순간 이 퍼즐 게임의 생명은 끝이다.

일본 전통연극 교겐(狂言·미친 소리, 허튼소리를 뜻하는 이야기극)계의 스타 노무라 만사이가 전편에 이어 세이메이로 출연한다. 그러나 눈을 한껏 치켜뜨며 중성적 캐릭터를 연기하는 그의 모습은 연극적 심각성과 영화적 심각성이 분명 같지 않음을 확인시켜 준다. 15세 이상 관람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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