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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3월 16일 19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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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총리를 맡을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사회노동당 당수(43)가 이라크 파견 병력 철수를 선언하자 미국과 영국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이번 선거 결과로 유럽의 정치 구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에서는 테러여파로 정권이 바뀌었다는 점에서 앞으로 알 카에다 등 테러조직이 각국 선거를 겨냥한 테러를 자행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늙은 유럽’ vs ‘범대서양 동맹’=지난해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이라크전쟁에 반대하는 프랑스와 독일을 ‘늙은 유럽’이라고 비아냥거렸다. 당시 스페인 국민당 정부는 이라크전에서 미국 영국과 보조를 맞췄다.
하지만 스페인의 정권 교체로 상황은 뒤집혔다. 사파테로 당수는 철군 방침과 ‘친유럽’ 외교정책을 펼칠 뜻을 분명히 했다. 프랑스 독일과의 관계 개선에 힘쓰겠다고 밝힌 반면 반테러 정책에 대해서는 미영의 ‘일방적인 조치’ 대신 유엔 주도의 ‘국제동맹’을 주장했다.
프랑스와 독일은 즉각 환영을 표시했고 로마노 프로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미국이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은 실패했다”면서 사파테로 당수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었다.
‘범대서양 동맹’을 주장하며 결속을 다져온 미국과 영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스페인의 병력 철수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양국 정상 모두 올해 선거를 앞두고 있다.
스페인을 제외한 이탈리아 불가리아 폴란드 체코 등은 이라크에 병력을 잔류시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16일 폴란드 야당이 이라크 파병 유지에 관한 국민투표 실시를 요구했고, 이탈리아 야당도 20일 병력 철수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 계획이어서 스페인 총선이 몰고 온 파고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선거용 테러’에 파병국 전전긍긍=이라크전을 지지했던 존 하워드 호주 총리는 16일 “호주 정부도 유권자들의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면서 “호주가 테러로부터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말해 테러 가능성을 우려했다. 이라크에 850명의 병력을 파병한 호주는 올 11월 총선을 실시한다.
이날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대테러회의에서 미 연방수사국(FBI)의 테러 전문가 존 피스톨은 “테러로 선거에 영향을 행사해 민주적인 시스템을 방해하는 것이 알 카에다의 새로운 전술일 수 있다”면서 “만약 이것이 의도된 결과라면 올해 선거가 있는 미국이나 아시아 지역 정부는 테러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영국 등 이라크 파병국들은 열차 테러에 대비해 지하철과 철도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고 있으며 EU는 테러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곧 고위급 회의를 열 예정이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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