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장강명/중국동포의 말… 말… 말…

  • 입력 2003년 11월 14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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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체류자 일제 단속을 나흘 앞둔 13일 중국동포 5000여명이 법무부에 국적회복 신청서를 제출했다.

오전 9시경 서울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 집결,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는 중국동포들과 함께 지하철을 탄 기자는 객차 안에서 1시간여 동안 그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경계하는 눈빛이던 이들은 시간이 가면서 차츰 속내를 드러냈다. 고국동포들에 대한 원망이 대부분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우리를 같은 민족으로 안 보는 것 같다. 일을 하러 간 공사장 식당이 너무 지저분해 항의했다가 ‘중국인은 원래 더럽게 살지 않느냐’는 핀잔만 들었다.”(65세 여성·일용 잡부)

“한국인들이 우리를 탈북자 취급하는 것이 기분 상한다. 우리는 중국에서 못살아서 도망쳐 나온 사람들이 아니다.”(58세 여성)

“당신들은 타민족의 땅인 중동에서 돈을 벌어왔으면서 왜 우리가 고국 땅에서 돈 버는 것을 못마땅해 하느냐.”(37세 남성·노동)

“우리는 일제 때문에 만주로 갈 수밖에 없었던 동포들이다. 우리도 한국에서 계속 살았다면 당신들보다 훨씬 더 잘 살았을 것이다.”(43세 여성·식당업)

그런가 하면 “우리가 여기서 돈을 많이 벌어 중국에 돌아가 부자로 살면 그게 한국에도 도움이 된다. 여기 돈을 훔쳐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50대 남성)라는 하소연도 있었다.

이들은 대화 도중 틈틈이 휴대전화를 받거나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고, 교통카드를 사용하는 등 한국 생활에 무척 익숙해보였다. 몇몇은 자기들끼리 말할 때는 이북 사투리를 썼으나 기자와 이야기할 때에는 완벽한 서울말씨였다. 일부는 세련된 용모로 ‘서울 사람들’과 구별이 되지 않았다.

이들은 이날 몇 시간에 걸쳐 법무부에 서류를 제출했으나 거의 대부분이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접수거절확인서만 받아 쥐고 돌아섰다.

중국동포들은 14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내고 집단 단식에 들어갔다. 헌법소원의 내용은 중국동포들이 자진해서 대한민국 국적을 버린 적이 없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중국동포들에게 국적 선택권을 주어야 한다는 것.

법리 논쟁이나 역사적인 사연과는 별개로, 우리 사회에 중국동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이로 인해 앞으로 여러 사회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매우 크다.

하루 동안 이들을 동행취재하면서 ‘외국인’인 중국동포들의 지위와 신분에 대해 우리 사회가 진지한 논의를 시작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강명 사회1부 기자 l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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