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테러, 親美왕정 노렸다”

  • 입력 2003년 11월 10일 18시 09분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8일 일어난 테러로 17명이 숨지고, 122명이 다친 뒤에도 리처드 아미티지 미 국무부 부장관은 알 카에다가 더 많은 추가 테러를 저지를 것이라고 9일 경고했다. 사우디 정부는 4600여명의 보안군을 테러 가능성이 높은 이슬람 성지(聖地) 메카에 배치하는 등 비상 태세에 들어갔다. 뉴욕 타임스는 10일 이번 테러의 목표는 미국 영국 등이 아니라 알 카에다 소탕전에 나선 사우디 왕가라고 보도했다. 사우디 왕가는 방만한 국가 경영과 부패로 비난받고 있으며 이슬람 종주국 특유의 원리주의가 테러리스트를 키우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사우디의 대(對)테러전=8일 테러가 발생한 무하야 주택단지는 사우디 왕궁과 별궁에서 멀지 않다. 이는 이번 테러가 주는 메시지와 관련이 있다고 외신은 분석했다.

미 정부는 9·11사태 테러범 19명 중 15명이 사우디 출신으로 밝혀진 이후 사우디 왕가에 대해 테러리스트 근절 압력을 넣어 왔다. 사우디는 9·11사태 이후 미국과 정보 외교 분야의 기밀 문건 3500건 이상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는 5월 리야드에서 대형테러가 발생한 후 알 카에다 소탕전을 벌여 왔으며 600명 이상의 혐의자를 체포했다.

▽겉치레에 그친 정치개혁=지난달 사우디 왕정은 1년 안에 전국 14개 지방의회 의원 절반을 선출한다고 밝혔다. 성사가 되면 1932년 건국 후 처음으로 실시하는 선거다.

미국이 사우디의 극단적 수구체제가 과격세력을 배양하는 토양이 돼왔다고 비판하고, 사우디 내 개혁파 인사들이 선거 실시와 표현의 자유 확대를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한 뒤 나온 조치였다.

그러나 선거 범위가 지역의회의 절반에 그치고 정확한 일정마저 나오지 않은 데다 30세 이상 남성만 유권자로 정한 현실이 바뀌지 않은 점 때문에 ‘겉치레 개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왕가가 세수의 60% 이상을 거둬들이고 △지나친 석유의존 경제 △20%를 웃도는 실업률 등 허약한 경제구조도 왕가를 압박하고 있다.

▽거세어지는 반발세력과 연계하려는 테러 조직=사우디 왕가가 선거 실시를 발표한 이튿날 리야드에서는 초유의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수백명의 청년이 개혁을 촉구했으며 약 300명이 체포됐다.

런던 소재 사우디 반정부 단체 이슬람개혁운동(MIRA)이 야당인사 구금에 항의하도록 촉구한 데 대한 동조시위였다. 중동 최고의 통제국가이며 대중시위를 불법화하고 있는 사우디에서는 이례적인 시위였다. 시위는 지난달 23일 지다 하일 담맘 등에서 또다시 발생했다.

뉴욕 타임스는 사우디의 이슬람 급진세력이 야당 세력을 이용하려고 한다며 와이치 파울러 전 사우디 주재 미국 대사의 말을 인용해 “급진세력을 막지 않으면 장차 사우디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결정적인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AP통신 등은 사우디정세 분석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사우디 왕가가 이 싸움에서 지면 사우디에는 아프가니스탄의 옛 탈레반 정권 같은 극단적 세력이 집권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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