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재벌구속 파장 證市대폭락…개방경제 후퇴 우려

  • 입력 2003년 10월 28일 18시 09분


《러시아 최대 재벌 유코스의 미하일 호도르프스키 회장(40)이 25일 구속된 여파로 주식시장이 폭락세를 보이는 등 러시아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2000년 취임 후 경제회복을 위해 표방해 온 시장 불간섭, 외국자본에 대한 시장개방 등의 정책이 정치적 갈등 때문에 후퇴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호도르프스키 회장이 야당에 정치자금을 제공한 것에 대한 보복이라는 의혹에 따른 것이다.》

▽주가 폭락 사태=유코스 주가는 27일 직전 거래일인 24일 종가보다 19.90%까지 떨어졌다가 다소 회복해 17.89% 하락한 주당 11.84달러 선에서 거래가 중단됐다. 러시아 종합주가지수도 14% 이상 폭락해 98년 러시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하락세를 보였다. 잘나가던 러시아 경제가 정치의 직격탄을 맞은 것.

올해 달러화 대비 12% 상승했던 루블화 가치도 이날 하루 동안 1% 하락했다. 미국 석유 메이저 엑손 모빌은 호도르프스키 회장 구속 이후 유코스 주식 매입 협상을 중단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28일 크렘린 강경파 가운데서는 호도르프스키 회장이 미국 이스라엘의 이익을 대변하는 서방의 대리인이므로 파산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27일 호도르프스키 회장에 대해 선처를 요청하는 정치 경제 지도자들과의 면담을 거절하면서 “법에 따른 수사가 계속될 것”이라고 못 박았다.

리처드 바우처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러시아에서 기업인들에게 가해지는 일련의 조치가 경제의 건전성과 투명성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며 “외국계 기업인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KGB 세력의 승리 신호인가=호도르프스키 회장 구속의 배경과 전망을 둘러싸고 갖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 최대 갑부인 그가 12월 총선과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야당에 정치자금을 지원했기 때문에 보복을 당했다는 게 중론이다.

로이터 통신은 호도르프스키 회장이 정치적 영향력을 넓혀 2008년 대선 때는 ‘킹 메이커’가 되든지, 직접 출마할 수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 통신은 또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그의 구속은 재벌들한테는 충격이겠지만 박탈감에 시달리는 대중들한테는 인기를 끌 것이라고 분석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번 구속은 옛 소련 비밀정보기구인 KGB 출신 인맥의 승리라고 보도했다.

이들이 유코스 수사에 반대해 온 미하일 카시야노프 총리와 알렉산드르 볼로쉰 크렘린 행정실장 등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 계열의 정치인들을 눌렀다는 것. 경제신문인 코메르산트는 “정부가 KGB화(化)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영국 BBC는 “구체제 세력이 선호하는 것은 ‘밀실거래’”라며 “이들은 정치자금을 제공할 리 없는 외국인투자자나, 투명회계 관행을 좋아할 리가 없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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