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전력망 제3세계 수준"

  • 입력 2003년 8월 17일 14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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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수퍼파워이면서 제3세계 수준의 전력망을 갖고 있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에너지부 장관을 지낸 빌 리차드슨 뉴멕시코 주지사)

미국이 사상 최악의 후진국형 정전사태로 큰 수모를 당했다. 미국은 1965년 대규모 정전사태에서 배운 '정전 지역을 최소화한다'는 교훈을 이번에도 실천하지 못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사태를 파악한 후에야 "나는 이것을 웨이크업콜(긴급경고)로 여긴다"면서 "(이번 사태는) 전력망을 현대화할 필요를 지적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에 따른 손실액은 수십억∼수백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이코노미스트들은 추정하고 있다.

▼사고원인

미국 8개주와 캐나다의 온타리오 지방 등 20만㎢의 땅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5000만명이 피해를 입은 이번 사태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고압송전선에 문제가 생긴 때문으로 드러났다.

사고원인을 조사중인 북미전기신뢰성위원회는 14일 오후 3시6분 클리블랜드 서쪽의 345KV 송전선이 밝혀지지 않은 이유로 단절된 것이 정전사태의 시작이 됐다고 16일 발표했다. 평소엔 주변 송전선이 추가부담을 커버하지만 첫 사고 후 26분이 지나면서 송전부담이 늘어난 다른 고압송전선이 열을 받아 단절됐다는 것.

이어 4시6분엔 같은 이유로 3개의 송전선이 단절됐고 수분 후엔 미 동부와 캐나다 일대 전기의 전압이 오르내리고 전류의 흐름에 이상이 생겼다. 더 많은 송전선이 단절되면서 발전소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10여초만에 다른 발전소까지 기능이 마비돼 4시11분부터 정전사태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동안 전력 전문가들과 전기를 많이 쓰는 대기업들은 미국 송전망 특히 중서부의 망이 지나치게 부하가 많이 걸리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해왔다. 오하이오주가 이런 경고를 집중적으로 받았으나 방치됐다고 뉴욕 타임스는 17일 지적했다.

오하이오주 일부에서는 13일 오후3시부터 평소보다 훨씬 자주, 큰폭으로 전압이 오르내리는 일이 체크되었는데도 무시됐다. 6월 중순부터 한달간 전압이 정상치보다 높아지는 상황이 1분이상 지속되는 일이 수시로 나타나기도 했다.

▼사후대책

리차드슨 전 에너지부 장관은 "미국 전기시스템의 대부분이 50∼60년 된 것"이라면서 "그러나 미국과 같이 기술자가 많은 나라에서도 이것을 고치자는 이야기는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에 정부와 여론의 주의를 끌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전문가들은 "전기 수요가 급증하는데 구식 송전시스템으로는 대규모 정전사태가 불가피하다"고 수년째 경고했으나 마이동풍이었다. 이를두고 dpa통신은 "모두들 '내가 그렇게 말했잖아'라고 핑계를 댈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번과 같은 대형사고를 피하려면 송전선과 송전타워, 변압기를 교체해야 하며 여기엔 560억달러(약 64조원)이 소요된다고 추정하고 있다. 그래야만 늘어나는 컴퓨터와 그 주변기기들, 대형화하는 주택들, 대기업들의 급증하는 전기수요에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라 미드 바라우넬 연방에너지규제위원장은 사고후에 NBC TV에 출연해 "사고 원인과 관계없이 송전망은 현재 경제를 지탱하지 못하므로 이를 손볼 필요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규모 민간 전기공급업체들은 경기침체에다 1990년대말 정부규제 해제에 따른 가격경쟁 때문에 이만한 투자자금을 마련할 능력이 없는 형편. 게다가 비용 외에도 환경보호주의자들과 땅 주인들의 반대로 송전설비를 세우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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