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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5월 8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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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분쟁지역을 누비며 난민보호 활동을 펼쳐 ‘난민의 어머니’라고 불려온 오가타 사다코(緖方貞子·76) 전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은 지난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종전 선언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10년간 발칸반도나 아프가니스탄 등 ‘현장’을 지켜오다가 현재 포드재단 방문연구원으로 있다. 뉴욕 유엔본부 부근의 재단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이라크전쟁과 탈북자 문제에 관해 들어보았다.
―UNHCR로 일하면서 전쟁터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가.
“UNHCR의 임무는 난민보호와 난민문제의 해결을 모색하는 것이다. 유엔은 전쟁지역에서는 일하지 않는데 UNHCR는 어쩔 수 없었다. 방탄조끼를 입고 전쟁터에 들어갔다. 정치적인 문제의 해결이 더디기 때문에 나는 조급해져서 정치 관계자들에게 빨리 해결하라고 닦달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세계 난민이 2100만명에 이른다. 해결이 가능한가.
“난민은 1995∼96년엔 2700만명이었으나 그 이후 줄어들고 있다. 전쟁이나 독재, 기아 등 고향을 등지게 했던 이유들이 해소되면 난민은 감소한다. 아프간에서도 23년간 난민이 늘었지만 새 국가가 세워진 뒤 귀향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라크전쟁에서 민간인 사상자가 많았는데….
“많았는지, 많지 않았는지 말하기 어렵다. 미군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에 대해서처럼 시가지나 시민들을 직접 겨냥해 공격하지는 않았다. 전쟁에서 민간인 사상이 없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불가능하다.”
―이라크에 언제 평화가 깃들 수 있는가.
“이라크인들은 사담 후세인의 독재를 싫어했지만 외세나 전쟁도 싫어한다. 또 미국이 이라크에서 떠나기를 원한다. 잘 교육받고 기술적으로 앞선 사람들이 있으므로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인프라가 갖춰지면 재건이 빨라질 것이다. 초기엔 혼란을 겪겠지만 안전 확보는 미국의 책임이다. 종교가 강조되는 아랍식 민주주의도 가능할 것이다.”
―이라크 새 정부 구성에 유엔이 적극 참여할 수 있는가.
“지금 미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으며 곧바로 이라크 민간인들에게 넘겨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옹호하지는 않는다. 유엔이 전문지식을 갖고 있고 새 정부 구성에 참여하려 하지만 미국이 원하지 않으면 유엔은 하지 못할 것이다. 그게 현실이다.”
―이번 전쟁으로 유엔의 역할과 위상이 위축됐다는 지적이 있는데….
“유엔은 공권력을 행사하는 기구가 아니라 카운슬(council·협의회)의 기능을 하는 곳이다. 그동안 지식과 경험을 축적해왔고 전문성이 있지만 강대국이 정하면 따라가게 마련이다.”
―20만∼30만명의 탈북자들이 중국을 떠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중국은 이들을 난민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중국이 지금까지의 태도와 정책을 바꿀지 궁금하다. 기본적으로 중국도 난민협정에 가입해 이를 지키고 있다. 탈북자가 난민 자격을 얻으려면 요건을 잘 갖춰야 한다. 중국은 탈북자를 이주자로 처리해서 북한에 돌려보내고 있는데 정밀판정이 필요하다. 일본과 한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이 문제를 고쳐야 한다. 아시아 국가들이 전체적으로 개선이 필요하다.”
―중국 내 탈북자들의 생활에 대해 세계가 어떤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탈북자들이 중국의 ‘지하세계’에 살면서 노동착취와 성적학대를 받는다고 한다. 이들은 범죄와 연결될 수도 있다. 이들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
자그마한 체구에 전형적인 일본 할머니인 오가타씨는 지난해 1월 아프간재건국제회의 의장을 맡고 아프간 난민촌을 직접 찾아다니며 각국의 지원을 이끌어낸 외교 수완가. 2000년에는 서울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내년 출간을 목표로 요즘 UNHCR 활동을 정리하는 책을 쓰고 있다”며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는 그는 아무리 봐도 칠순을 넘긴 노인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오가타 사다코 프로필▼
-1927년 일본 도쿄 출생
-일본 세이신(聖心)여대 졸업
미국 캘리포니아주립 버클리대 박사(정치학)
-세이신여대 등에서 교수
-1976년 일본 유엔대표부 공사, 특명전권공사
-1990∼2000년 유엔난민고등판무관
-2001년 인간안전보장위원회 공동의장(현재)
-2002년 아프가니스탄 재건 국제회의 공동의장
-포드재단 방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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