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뜨는 별]⑤뤄간 정법위 서기

  • 입력 2002년 11월 11일 17시 48분


뤄간
“쩡칭훙(曾慶紅)이 장쩌민(江澤民)의 장자방(張子房)이라면 뤄간(羅幹)은 리펑(李鵬)의 한신(韓信)과 같은 존재다.”

중국 공안조직을 통할하고 있는 뤄간 당 중앙정법위원회 서기에 대한 이 같은 평가는 중국 권력무대에서의 그의 역할을 잘 설명해준다. 뤄 서기는 보수파로는 유일하게 차기 정치국 상무위원회 진출이 유력시되는 인물.

현 정치국원 21명과 후보위원 2명 중 보수파로 분류되는 인사는 리펑(李鵬·74)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과 장춘윈(姜春雲·72) 상무부위원장 정도다. 국무위원 10명 중에는 뤄 서기가 유일하다. 리 상무위원장과 장 상무부위원장은 이번 지도부 개편에서 연령제한 70세에 걸려 은퇴가 불가피하다. 그럴 경우 뤄 서기는 사실상 보수파의 ‘교두보’로 남게 된다.

뤄 서기의 현 권력서열은 높다고 할 수 없다. 정치국 서열은 16위이고 중앙서기처는 7명 중 5위, 국무원 서열은 7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는 정법위 서기로서 공안부와 국가안전부를 총괄하는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다.

그가 정치국 상무위원이 된다면 당 고위간부들의 감찰을 맡는 중앙기율검사위 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리 상무위원장은 퇴임 후 자신과 측근들이 부패 혐의로 ‘표적 사정’ 당할 것을 우려해 뤄 서기의 중앙기율검사위 서기 임명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뤄 서기는 1988년 국무원 편제 개편으로 신설된 노동부장에 임명된 지 불과 8개월 만에 총리비서실장격인 국무원비서장이라는 요직에 등용됐다.

구 소련에 유학했던 리 상무위원장은 1988년 초 내각을 개편하면서 구 소련권 출신 유학파를 대거 기용했다. 이때 전문기술관료로서 명성이 자자하던 뤄 서기를 국무원에 진출시킨 것은 물론 자신이 주임을 맡은 국무원 기구편제위원회의 부주임에 앉혔다.

그러나 뤄 서기의 오늘이 리 상무위원장의 덕분만은 아니라는 전언이다. 그는 리펑 계열로 분류되면서도 장쩌민 국가주석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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뤄 서기는 1970년대 초 제1기계공업부에서 근무할 때 기계공업부 외사국장이던 장 주석과 동유럽 기계설비 수입문제를 협의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또 1980년 중앙과 지방의 수출입 업무를 통합 관리하는 수출입관리위원회를 만들었을 때 장 주석은 부주임이었고 뤄 서기는 허난(河南)성 수출입관리위 부주임이었다. 이런 인연은 공안전문가가 아닌 뤄 서기가 1993년 정법위 부서기가 되고 1997년 정법위 서기까지 오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중국 최대의 골칫거리인 파룬궁(法輪功) 문제에도 잘 대처해 장 주석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산둥(山東)성 출신의 뤄 서기는 ‘산둥하오한(山東好漢)’이라는 말에 걸맞은 당당한 풍채를 자랑한다. 그는 베이징(北京) 강철학원 재학 중 유학생에 선발돼 1955년 구 동독 프라이부르크 야금학원 주조학과에 입학했으며 1962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어학능력도 뛰어나 독일어는 물론 영어와 프랑스어도 능통하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뤄간은…▼

△1935년 7월 산둥성 지난시에서 출생

△1953∼54년 베이징 강철학원

압력가공과 수학

△1956∼62년 동독 프라이부르크

야금학원 기계주조학과 졸업

△1960년 중국 공산당 입당

△1970∼80년 제1기계공업부 정저우

기계연구소 부소장

△1981∼83년 허난성 부성장

△1983∼88년 중화전국총공회 부주석

△1987년 10월 중앙위원

(제13차 전국대표대회)

△1988∼93년 국무원 비서장,

중앙정법위원회 부서기

△1997년 정치국원, 중앙서기처 서기,

중앙정법위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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