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극장 인질극 유혈진압]“사망 인질 대부분 독가스 중독”

  • 입력 2002년 10월 27일 18시 20분


숨진 체첸반군 여성들 - 모스크바AP연합
숨진 체첸반군 여성들 - 모스크바AP연합
‘절반의 성공.’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초강수’로 장기화 조짐을 보였던 모스크바 문화회관 인질극이 조기에 해결됐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체첸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강경책이 국제적 조명을 받게돼 푸틴 대통령의 부담은 그만큼 커졌다. 또 “인질들을 살해하기 시작해 강경 진압이 불가피했다”는 러시아 정부의 설명이 석연치 않은데다 위험한 신경가스 사용 등에 대한 러시아 내부의 의혹이 불거지고 있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릴 가능성도 적지 않다.

▽“최초의 7분이 작전의 성패를 갈랐다”〓특수부대원들의 첫째 타격 목표는 온몸에 폭탄을 두른 여성 자폭조. 이들을 7분내 사살하고 폭탄을 제거한 후 저항하는 나머지 반군을 소탕하는 데 고작 40여분이 걸렸다.

러시아 당국 발표에 따르면 진압작전은 26일 반군이 ‘인질살해 시한’으로 정한 오전 6시(현지시간)를 20분 넘겨 인질 2명이 살해된 직후 시작됐다.

가장 먼저 출입구 옆의 벽을 폭파해 구멍을 낸 뒤 가스를 분사했다. 환풍구를 통해서도 가스를 분사한 후 수류탄을 던져 넣었다.

진입조는 6시40분경 극장 안으로 진입, 가스로 의식을 잃은 여성 자폭조의 관자놀이에 총을 쏜 뒤 뇌관을 해체했다. 여성 자폭조는 1인당 2㎏씩 폭발물을 두르고 있었으나 무색무취의 가스에 의식을 잃었다. 객석에 설치된 50㎏짜리 대형 폭발물도 터뜨리지 못했다.

극장 전체가 날아갈 위험이 사라지자 정문과 2층 객석 창문으로 들어온 본대는 극장 곳곳에서 저항하는 나머지 반군을 사살했다. 인질극을 주도한 모프사르 바라예프는 코냑병을 든 채 사살된 모습으로 발견됐다.

러시아의 진압 과정은 인질로 붙잡혀 생사가 엇갈리는 상황에서도 사태를 꼼꼼히 머릿속에 새겨넣은 인테르팍스통신의 올가 체르냐크 기자를 통해 러시아와 세계 언론에 생생히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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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가스’ 논란〓그러나 러시아 특수부대가 사용한 가스에 인질범뿐 아니라 인질들까지 1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가스의 정체와 ‘살포가 적절했나’라는 의문이 제기됐다. 병원에 후송된 546명의 인질 중 4, 5명만이 총상을 입었으며 나머지는 대부분 가스에 중독됐다. 이중 상당수가 위독하다.

러시아 연방보안부(FSB)는 “자체 개발한 무색무취의 신경가스인 ‘인카파시타노프’로 화학무기금지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라며 인질들이 탈진 상태에서 쇼크와 심장마비 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는 진압 당시 인질들의 의식불명 환각상태와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 화학무기금지협정 대상인 발륨을 포함한 강력한 진정제나 BZ가스 같은 환각제를 사용한 것 같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정부는 논란이 증폭되자 “자폭용 폭탄을 두른 인질범을 무력화하려면 가스 사용이 불가피했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그러나 진압부대가 오전 5시쯤 먼저 유독성 가스를 살포하며 공격을 시작했고 인질범들이 인질들을 해치지 않았다는 상반된 증언들이 잇따르고 있어 과잉 진압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모스크바 인질극 일지▼

▽23일〓오후 9시께 50여명의 체첸 반군 모스크바 남동부 문화회관(돔 쿨트르이) 극장에 진입, 외국인 75명을 비롯한 인질 700여명 억류.

인질극 주도한 모프사르 바라예프, 체첸에서 러시아군 철수 요구. 극장 폭파 위협

어린이와 외국인 포함해 인질 30여명 첫 석방

▽24일〓러시아 당국, 반군과 협상 시작. 오후 2시께 영국인 1명 포함 5명 석방.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멕시코 APEC 정상회의 참석 취소 발표.

오후 6시30분께 여성 2명 창문으로 탈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인질극 비난 인질 석방 요구

▽25일〓오전 인질 6명 추가 석방. 오후에 스위스 소녀 1명 포함, 어린이 8명 석방.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연방보안국(FSB) 국장, 인질 석방하면 반군 목숨 보장 약속. 에호 모스크바 라디오 방송, “반군 26일 오전 6시부터 인질 살해 경고” 보도.

▽26일〓반군 인질 살해 시작. 러시아 특수부대, 진압 작전 개시 40분 만에 완료.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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