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충돌' 저자 아슈카르 인터뷰 "이라크戰, 야만성 충돌"

  • 입력 2002년 9월 27일 19시 05분


질베르 아슈카르
질베르 아슈카르
“이라크전이나 9·11테러 등은 ‘문명간의 충돌’이 아닌 ‘야만들의 충돌’에 기인한다. 이 같은 국제분쟁은 날로 심각해질 것이며 다가올 ‘제2의 냉전’은 미국 대 러시아와 중국의 대립 구도로 펼쳐질 것이다.”

유럽의 대표적 진보 지식인 질베르 아슈카르(51·파리 제8대학 정치학과 교수)가 제시하는 인류의 미래상은 암울했다.

한국정치학회 추계 학술대회(27일 외교안보연구원, 28일 서울대 사회과학관)에 초청돼 27일 ‘야만의 충돌과 21세기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주제 발표를 한 그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만났다.

그는 ‘야만의 충돌 (The Clash of Barbarisms)’이란 저서로 유명하다. 테러리즘의 원인을 문명간 충돌이 아닌 야만의 충돌에서 찾고 있는 이 책에서 그는“미국이 과잉극화(sur-dramatization)된 9·11테러를 빌미로 걸프지역과 중앙아시아지역에서 패권을 확장하려 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국제정세는 더욱 극심한 혼란과 대립구도로 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 책은 국내에서도 다음달 출간된다.

-당신의 저서 ‘야만의 충돌’은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에 정면 도전한다는 인상을 주는데….

“분명히 야만의 충돌인데 이를 문명의 충돌이라고 하는 것은 기막힌 오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오사마 빈 라덴이 이슬람과 서방 문명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협상과 존중을 전제로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문명이며 문명인의 소임이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판 공습이나 이라크전, 9·11테러 모두 타자의 고통과 빈곤을 역이용한 야만적 행위들이었다. 국제분쟁은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이 같은 야만성들이 충돌하는 것이다.그러나 미국은 오히려 9·11테러를 빌미로 헤게모니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알 카에다와 전혀 무관한 중앙아시아 카스피해 지역까지 미군력을 배치시켰으며 영구적인 미군기지 또한 이 지역에 건설할 것이다.”

-미국의 대 이라크 공격이 감행된다면 세계정세, 특히 동아시아에 어떤 영향을 줄 것으로 보는가.

▼질베르 아슈카르 약력▼

△1951년생 레바논 출신

△1983년 프랑스 이주

△파리 제8대학(생드니) 정치학 박사 현 파리 제8대학 정치학과 교수 및

시사월간지르몽드디플로마티크 편집

위원

△저서 ‘새로운 냉전’ ‘에른스트 만델의

마르크스주의’‘바이오테러리즘의 유령’ ‘야만의 충돌’

“미국은 석유 장악을 위해 이라크를 침공하려 한다.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고 신정부가 들어서면 방대한 이라크 내 원유들은 모두 부시 행정부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미국 석유기업들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이 세계 원유시장을 잠식하게 되면 동아시아국가들의 미국 의존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는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종속을 의미한다.”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명된 북한도 미국의 공격 대상이 될 수도 있는가.

“그렇지 않다. 미국은 북한 정권이 붕괴되길 원하지 않는다. 이라크처럼 원유를 보유하고 있지도 않고 붕괴될 경우 오히려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미국이 감당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국은 북한을 구실로 동아시아 패권장악을 위해 한반도에 계속 주둔하고 싶어한다. 따라서 북한이 계속 정권을 유지해 그 빌미를 제공하길 미국은 내심 바라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이라크전에 반대하면서 미국 대 중국 러시아의 대립 구도가 심상치 않은데….

“중국과 러시아는 어느 때보다 우호적이고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이 두 국가가 미국과 정면 대립할 경우 세계는 미국 대 중국 러시아라는 구도의 새로운 냉전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중국은 93년 걸프전 당시 경제적 성장,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위해 미국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목표를 어느 정도 이룬 중국은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대해 이전보다 훨씬 강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러시아 또한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협조함으로써 군사적 경제적 실리를 챙기려 했지만 원하는 것은 하나도 얻지 못했다. 실망한 러시아는 최근 이란에 5개의 원자로를 건설해 주기로 하는 등 미국이 악의 축으로 지명한 이란 이라크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인류 평화를 위한 해결책은….

“석유가 부족하다고 다른 곳(이라크)의 유전개발권을 무력으로 장악할 것이 아니라 원유 부족을 대체할 만한 대응책과 에너지 절약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야만적이고 위험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세계 전역에서 이 같은 흐름에 제동을 걸고 문제를 제기하는 범세계적인 운동 단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대학 캠퍼스 내에서 활동하는 젊은 세대들이라는 것 또한 고무적이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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