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ABM협정 일방 탈퇴이후]군비증강 다시 불붙나

  • 입력 2001년 12월 14일 17시 54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13일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 탈퇴를 일방적으로 결정, 발표함으로써 미국과 러시아 양국은 그동안 전략 핵무기 감축을 축으로 이뤄져왔던 국제 군축기조의 구도를 다시 설계하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

1972년 체결된 ABM 협정은 미-러 양국 중 어느 한쪽이 선제 핵공격을 받은 뒤에도 이를 방어해 ‘2차 핵 보복’이 가능하도록 보장함으로써 핵 전쟁을 억제하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ABM 폐기 이후 양국은 이를 대체할 새로운 전략적 관계의 틀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

또 ABM 협정과 함께 양국의 획기적인 군축 노력의 결정체였던 1, 2단계 전략핵무기감축협정(STARTⅠ·Ⅱ)도 폐기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어 국제적인 군비 증강경쟁이 급속도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는 ABM 협정을 미국에서 일방적으로 파기한 만큼 START를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 있는 빌미를 얻었다. 실제로 아나톨리 크바시닌 러시아 참모총장은 미국의 ABM 탈퇴 결정에 대해 “세계적인 군비 경쟁을 촉발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러시아가 1, 2단계 START에서 탈퇴할 가능성이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 바 있다.

START까지 폐기된다면 세계 양대 핵 억제 모델이 모두 사라져 중국 인도 파키스탄 등 핵보유 국가들이 자유롭게 군비 경쟁을 도모할 가능성도 있다. 일부에서는 핵확산금지협정(NPT) 폐기 가능성까지 점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ABM 탈퇴는 놀라운 일은 아니다. 미국은 이라크 북한 등 이른바 ‘불량국가’의 공격으로부터 본토를 방어하고 동맹국의 안보까지 책임지는 미사일방어(MD) 체제를 추진하면서 걸림돌인 ABM 협정의 수정 또는 탈퇴를 줄곧 주장해 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의 일방적인 ABM 협정 탈퇴에 대해 ‘실수’라고 규정하면서도 “전혀 예측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러시아 안보에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해 절제된 반응을 보였다.

미국과 함께 ‘세계 전략의 맞상대’라는 초강국으로서의 면모를 상실케 된 러시아는 ‘무작정 반대가 능사는 아니다’는 현실론을 바탕으로 미국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MD 체제에 대응, 새로운 협정안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핵탄두가 20여기밖에 안 되는 중국도 MD 체제의 대만 적용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으나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이번 테러 전쟁을 계기로 쌓은 미국과의 유대를 저버리고 적극적으로 반대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성규기자·외신종합>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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