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동포로 학살 현장]CIA 진압작전 깊이 개입

  • 입력 2001년 11월 30일 18시 31분


《‘마자르이샤리프의 포로 수용소에서 선(善)과 악(惡)의 경계가 흐려졌다….’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국내외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포로수용소에서 무자비한 폭동진압 실상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그동안 잠복돼 있던 ‘테러전쟁의 인권유린 논란’이 재연되고 있는 것. 미국내에서도 9·11 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취한 일련의 조치들이 위헌 및 위법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확전 움직임에 대해서도 프랑스 독일 중국 등이 제동을 걸고 있다. ‘테러전쟁 오명(汚名)’으로 미국과 우방들간의 국제적 연대에 균열 기미마저 감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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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들은 마치 파편처럼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일부 시신은 머리 위쪽이 잘려 나가고 일부는 팔 다리를 찾아볼 수 없었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말들은 갈라진 배 사이로 시뻘건 내장을 드러냈다. 숯검정이 된 군용 차량들이 곳곳에 고개를 처박고 사방에 폭탄 파편과 탄피가 깔려 있었다.”

탈레반군에 가담했던 외국인 병사 포로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아프간 북부 마자르이샤리프 부근의 칼라 이 장히 포로 수용소. 북부동맹군과 미군에 의해 진압된 뒤 28일 서방 기자들에게 공개된 현장은 처절했다.

AFP통신의 한 기자는 “언덕 위의 오래된 요새에는 살육의 광기만이 가득했다”고 적었다.

이곳에서 모두 450명의 외국인 포로가 죽었다. 이들은 아프간의 이슬람 형제들을 도와 ‘성전(지하드)’을 벌이려고 온 파키스탄인 아랍인 우즈베키스탄인 체첸인들이었다.

AP통신 기자는 “많은 시신들의 팔이 끈 등으로 결박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갈색 터번을 두른 검은색 상의의 한 북부동맹 사령관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우리는 그들에게 투항할 기회를 줬지만 거절당했다. 그러니 죽일 수밖에…”라고 말했다.

국제사면위원회는 ‘포로 살육’의 진상을 규명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나 진압을 주도한 미국과 영국은 침묵하고 있다.

국제사면위는 29일 “즉시 국제 조사단을 보내 진압 과정에 미군과 영국군이 얼마나 가담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피터 하인 영국 외무장관은 이날 영국의 한 방송을 통해 “전쟁에서 이런 일은 흔히 발생한다”며 “조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포로 폭동 진압에는 미 중앙정보국(CIA)이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포로수용소에서는 활동 중이던 CIA 비밀공작작전국 소속의 마이크 스팬(32)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김성규기자>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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