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 석방'이후 과제]美-中 기체반환-배상 남은 숙제로

  • 입력 2001년 4월 12일 00시 04분


미군 정찰기사건과 관련해 쑨위시(孫玉璽)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0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은 ‘sorry’와 ‘apologize’의 차이를 잘 알 것”이라며 중국이 미국의 유감 표명을 받아들일 수 없음을 거듭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중국의 강경한 태도는 11일 미국측의 사과서한을 받고 누그러졌다.

탕자쉬안(唐家璇)외교부장은 조지프 프루허 주중 미국대사로부터 미국정부가 보낸 사과서한을 받고 “아직 충돌사고 문제가 완전 해결되지는 않았으나 중국은 승무원들을 돌려보내기로 했다”며 이들을 송환키로 했음을 발표했다.

중국이 불과 하루 만에 태도를 바꾼 것은 미국 정부가 중국이 받아들일 만큼의 사과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베이징(北京) 외교 소식통들의 분석이다.

미국 정부가 다섯 번이나 서한의 내용을 고치는 등 정성을 기울인 데다 이 과정에서 중국 정부와 모종의 막후조율이 있었을 것이라는 게 외교 소식통들의 관측이다.

승무원 송환문제가 해결됨에 따라 이제 남은 것은 정찰기 기체 송환과 배상문제.

그러나 이 문제들은 승무원 송환문제보다 복잡한 데다 양측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어 쉽게 풀리기 어려울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이 승무원 송환 결정을 발표하면서 ‘인도적인 배려’임을 강조하고 아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우선 기체 반환문제를 둘러싸고 양측간의 본격적인 힘겨루기가 시작될 전망이다.

중국은 충돌사고에 대해 모든 책임이 미국에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미국은 충돌사고 지점은 공해 상공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미국은 중국에 보낸 사과 서한에서도 정찰기가 중국 영공을 침범해 사고를 일으켰다는 점은 명시하지 않은 채 단지 충돌사고 후 긴급피난을 위해 중국 영토를 침범했다는 점에 대해 사과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과 미국이 사고 경위 조사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증거가 될 정찰기 기체가 중국에 있는 데다 주요 데이터들도 승무원들이 이미 파괴한 것으로 알려져 결론을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사고 원인에 대한 입장도 서로 엇갈리고 있다. 미국은 중국 전투기가 지나치게 근접해 요격하다 사고를 일으켰다고 밝힌 반면 중국은 미군 정찰기가 중국 전투기를 향해 급회전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서로의 주장이 맞서는 한 배상문제도 논란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은 이미 관영 언론들을 통해 미국측이 사고를 유발했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배상을 받아내지 않고는 지도부의 체면이 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으로서는 배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충돌 사고에 대한 미국의 잘못을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에 물러설 수 없는 처지에 있다.

따라서 이번 충돌사고는 미중 양측이 초기 대응만 잘 했다면 지금처럼 서로 곤란한 입장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베이징 외교가의 평가다. 미국 행정부가 중국을 잘 이해하지 못한 데다 처음부터 강력한 대응이라는 무리수를 뒀다는 얘기다.중국 지도부로서도 1999년 유고 중국대사관 오폭사건 때 미국에 대해 너무 유연한 대응을 했다는 이유로 국민으로부터 강한 불만을 산 적이 있어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양보할 수 없는 고민도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은 미중 양측이 서로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하는 계기가 되면서도 서로 손해보는 게임으로 끝날 것이라는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베이징〓이종환특파원>ljhzip@donga.com

▼미중 정찰기 사건 줄다리기▼

중국이 11일 미국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의 충돌로 중국 하이난(海南)섬에 비상착륙했던 미 정찰기 승무원들을 인도적 차원에서 송환시키기로 결정함에 따라 이번 사건은 발생 11일째에 접어들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됐다.

남중국해 부근에서 정찰활동을 벌이던 미국의 EP3 정찰기는 1일 이를 추적하던 중국 전투기 2대 중 1대와 충돌, 이날 오전 9시33분 하이난섬에 비상착륙했다. 정찰기 승무원 24명은 바로 중국 당국에 의해 억류됐다. 중국전투기는 추락했으며 조종사와 함께 실종됐다.

사고 직후 미국은 정찰기가 공해 상공에서 통상적인 정찰활동을 수행하고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중국은 이 비행기가 중국의 영공을 침범했다고 주장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일 중국에 대해 미 정찰기와 승무원의 즉각적인 송환 및 승무원들에 대한 미국측의 면담을 허용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중국의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은 3일 “이번 사고의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측에 있다”고 비난했고 부시 대통령은 “중국이 승무원 송환을 늦출 경우 미중 관계가 훼손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이날 승무원들을 처음으로 면담했다.

4일 장 주석은 미국측에 충돌사건에 대한 사과를 공식 요구했다. 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중국 조종사의 실종에 대해 ‘유감(regret)’을 표명하고 첸치천(錢其琛) 중국 부총리에게 외교적 해결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부시 대통령도 5일 이번 사건에 대한 유감을 표명했다. 그는 종전과는 달리 승무원들의 송환을 요구하면서도 ‘즉각’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고 정찰기에 대해선 언급도 하지 않았다.

미 백악관은 6일 승무원 송환 등을 위한 중국과의 협상이 진전되고 있다고 밝혔고 파월 국무장관도 낙관론을 폈다.

그러나 중국의 첸 부총리는 7일 파월 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미국의 유감 표명은 충분치 않다며 사과를 요구했으나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

8일 딕 체니 미 부통령은 미국이 이번 사건에 대해 중국이 요구하는 사과를 할 이유가 없다고 강변했으나 파월 장관은 사건 발생 후 처음으로 “중국 전투기 조종사의 인명 손실에 대해 ‘미안(sorry)’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국간 협상이 큰 진전을 보지 못한 가운데 부시 대통령은 9일 “외교엔 시간이 걸린다”고 밝혔다. 미국측은 이날 워싱턴 주재 양제츠 중국대사의 부임 환영 리셉션에 대거 불참해 중국측에 대한 불쾌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미국은 한편으론 중국과의 초안 교환을 거쳐 중국에 이번 사건을 ‘매우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공식 서한을 보냈고 중국은 11일 이를 수용해 마침내 미 승무원들의 송환이 이루어지게 됐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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