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尼 와히드 정치생명 '풍전등화'

  • 입력 2001년 2월 1일 18시 34분


와히드 하야를 요구하는 시위자들
와히드 하야를 요구하는 시위자들
인도네시아의 압두라만 와히드 대통령이 집권 후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의회는 1일 표결을 통해 압도적인 차로 부패 혐의를 인정했으며 이에 고무된 1만7000여명의 시위대는 대통령궁을 에워싼 채 시위를 벌였다.

의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고 조사특위가 제출한 보고서를 심의한 끝에 393대 4의 압도적인 차로 와히드 대통령의 부패 혐의를 인정했다. 군부와 경찰도 의회의 결정을 수용한다고 발표해 가뜩이나 정권기반이 취약한 와히드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의회는 탄핵절차를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와히드 대통령이 속한 국민각성당 소속 의원 51명은 이날 표결이 진행되면서 대세가 기울자 투표를 거부하고 의사당을 나갔다.

와히드 하야를 요구하면 행진하는 대학생들

의회가 부패혐의를 인정했다는 소식에 고무된 대학생 등 1만7000여명의 시위대는 대통령궁을 둘러싼 채 즉각 하야를 촉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무장경찰관 2000여명은 이날 의사당 주위를 봉쇄한 채 시위대의 접근을 막았다. 시위대는 “와히드는 더 이상 나라를 망치지 말라”는 등의 피켓을 들고 즉각 퇴진을 요구했다.

와히드 대통령을 지지하는 1300여명의 시위대도 의사당 주위에서 맞불을 지폈다. 일부 지방 도시에서는 와히드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가 벌어지는 등 퇴진 요구를 놓고 정국이 대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와히드 대통령은 1일 대통령궁에서 비상 각료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M D 마푸드 인도네시아 국방장관은 “정치지도자들이 혼란을 수습하지 못해 나라가 분열될 위기가 닥치면 군부가 정권을 잡으려고 시도할 것”이라며 쿠데타 발생 가능성을 우려했다는 외신보도도 나오고 있다.

와히드 대통령은 전날 회견에서 최대정당인 민주투쟁당 당수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부통령과 군부가 지지하고 있다면서 사태를 낙관했으나 민주투쟁당은 이날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해 상황이 급변했다.



의회가 와히드 대통령의 혐의를 공식 인정함에 따라 탄핵을 위한 1차단계로 해명요구서가 발부된다. 대통령이 3개월 내 의회에 출석해 소명하지 않으면 재소환에 이어 대통령 탄핵요구를 위한 국민협의회(MPR)가 소집된다.

이에 앞서 의회 특위는 지난달 29일 와히드 대통령이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두 건의 사건에 대한 조사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특위는 지난해 10월 이후 조사를 통해 지난해 1월 발생한 조달청 공금 횡령사건에 와히드 대통령이 개입한 증거를 확보했다. 또 브루나이 국왕의 기부금 200만달러(약 25억원)의 성격과 사용처에 대한 대통령의 해명도 믿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특위 조사결과 와히드 대통령의 전속 안마사였던 알립 아궁 수원도는 조달청 공금 350억루피아(약 45억원)를 횡령해 이 가운데 50억루피아를 대통령의 측근에게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와히드 대통령이 분쟁 지역인 아체와 서부 칼리만탄, 암본, 이리안자야의 구호에 썼다며 결백을 주장한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 기부금은 해명과 달리 측근에게 맡겨 별도로 관리해온 사실도 밝혀졌다.

와히드 대통령은 99년 10월 이슬람계 다수 정당의 옹립으로 간접선거를 통해 임기 5년의 대통령에 당선됐다. 정권기반이 취약하자 대선투표에서 치열한 대결을 벌였던 수카르노푸트리 여사를 부통령에 임명했다.

<홍성철기자>sungchul@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