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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9월 26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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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디외〓문화의 생존에 대한 문제는 도처에서 제기되고 있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은 철저히 상업 목적이 아닌, 그리고 방송매체 위에 군림하는 권력을 통해 대중매체의 생산을 지배하는 사람들의 의도에 따르지 않는 ‘문화적 재생산’을 보존하는 일이다. 19세기 이후 유럽 아방가르드 예술의 생산처럼 비상업적 또는 반상업적 생산이 시장의 압박 검열 유혹 속에서 존속할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 이런 일은 개인적 영웅주의를 버린 저항을 필요로 하며, 작가 예술가 학자들은 새로운 문화질서가 가져 온 위협과 자신들의 공동 이해 관계에 대해 의식을 가져야 한다.
김〓요즘은 모든 것이 혼합 그 자체로 보인다. 혼합 자체가 하나의 질서인 듯 인식된다. 이런 퓨전 문화에서 당신이 말하는 ‘구별짓기’는 어떤 것인가?
부르디외〓전세계의 젊은이들은 어떤 동질적 외양을 갖고 있지만 그들의 존재, 교육 및 노동 조건에서는 현실적으로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또 앞으로도 차이를 보일 것이다. 나는 ‘젊음’이란 단지 하나의 ‘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차이는 약화될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모든 개인은 거대한 중류층으로 흡수될 것이라는 생각은 몇몇 사회학자를 포함해 관념론자들이 만들어 낸 신화일 뿐이다. 세계은행의 최근 보고서에서 밝혀진 것처럼 신자유경제의 적용에 따라 부의 차이가 엄청나게 뚜렷해졌다.
김〓사회계층이 필연적으로 문화적 취향을 결정한다고 주장하는데, 자라난 사회적 배경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문화적 취향이 같아서 모이는 모임도 있지 않는가?
부르디외〓취미생활은 사회적 지위와 관련된다. 사회적 지위는 취향을 통해 드러난다. 문화적 취미와 취향의 범위는 자산의 규모와, 자산의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사회적 위치에 대응한다. 아니, 동일하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김〓한국은 학연 지연 혈연 관계가 강하게 작용하는 사회지만 평등한 교육기회, 학문의 다양화 등을 통해 소수 엘리트 사회를 벗어나 다수의 전문인 양성을 목표로 하는 교육정책을 안정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이 경우에 당신이 말하는 ‘지배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부르디외〓한국의 교육환경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학교는 어디서든지 사회구조의 재생산에 결정적으로 개입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배관계 안에서 학교는 결코 ‘중립적’일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현대사회에서는 사회적 위치에 따라 주어지는 문화자산의 역할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 자산은 가족에 의해 매우 불평등하게 전달된다. 정치만이 가족체계에서 물려받은 사회적 불평등의 재생산에 대한 학교의 기능을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중화할 수 있다.
김〓요즘 한국에서는 인터넷 사용이 일반화돼 있다. 대통령 또는 정부 각료가 어떤 담화를 발표하면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 이런 상황에서 여론은 권력층이 조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부르디외〓인터넷은 의견을 표현하고 교류하고 공개적으로 자신을 알리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이 여론이나 사회적 운동을 창출할 수 있는 동원의 수단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터넷은 온갖 종류의 신화로 싸여 있기 때문에 비판적인 눈으로 관찰해야 한다. 컴퓨터를 이용한 정보 접근은 이미 문화자산의 소유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정리〓김형찬기자>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