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블레어]제3의길 적용실패 경기 침체

  • 입력 2000년 8월 2일 18시 43분


“지난 몇 주 사이 영국의 정치적 지형에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4개월전만해도 토니 블레어 총리의 위치는 난공불락이었다. 그러나 지금 블레어가 운전하는 기차는 바퀴가 빠져 덜커덩거리고 있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런던 스펙테이터’ 지의 정치부장 브루스 앤더슨은 최근 UPI 통신에 기고한 칼럼 ‘토니 블레어, 잊혀지는가’의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했다.

이른바 ‘제3의 길’을 앞세우며 화려하게 등장했던 영국의 젊은 총리 블레어가 ‘날개없는 추락’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5일 자신의 중도하차설을 부인하는 기자회견을 해야 할 정도로 코너에 몰렸다.

그는 회견에서 “노동당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다시 시작하는 총리의 임기를 모두 채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그가 내년 총선에 승리할 경우 임기중에 물러나 노동당 2인자인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에게 총리직을 물려줄 것이란 소문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었다.

영국 여론조사기관인 MORI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블레어에 대한 ‘순수 만족도(만족도에서 불만족도를 뺀 수치)’는 올초부터 지난달 사이 무려 30%포인트가 떨어졌다.

블레어가 위기에 빠진 주원인은 그가 주창한 자본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의 현실적용 실패와 파운드화 강세에 따른 경제침체.

블레어 총리는 지난달 31일 총리 관저에서 닛산 자동차의 카를로스 고슨 사장과 만나 닛산의 소형차 ‘마이크라’의 생산기지를 외국으로 옮기지 말아달라고 호소했으나 거절당했다.

닛산 자동차 공장에 근무하는 영국 노동자는 5000여명. 부품지원업체까지 따지면 수만명이 이 공장에 생계를 의지하고 있다. 닛산 자동차가 영국에서 빠져나가려는 것은 영국의 유로화 불참에 따른 파운드화 강세로 수출경쟁력이 크게 저하됐기 때문. 다른 외국기업도 영국내 사업을 축소 철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영국 경제가 추위를 느끼고 있다.

그러나 영국 국민의 70%는 아직도 유로화 가입에 반대하는 등 유럽통합 움직임에 뿌리깊은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경제 침체 타개를 위해 지난달 발표한 3년간 430억파운드(약 73조원)의 재정지출 확대 방침도 유권자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이는 사실상 전통적인 노동당 정책으로 회귀를 의미하는 것으로 ‘제3의 길’의 포기를 뜻한다. 블레어는 3년전 총선 때 “많은 공공 투자가 더 나은 공공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환상”이라고 주장했었다.

블레어 정부의 난민정책에 대한 영국 중산층의 누적된 불만도 블레어 인기 급락의 한 요인이다. 4월 보수당 당수인 윌리엄 헤이그가 블레어의 난민 정책에 대해 직격탄을 퍼부으면서 잘 나가던 블레어에게 시련이 닥치기 시작했다고 분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다 5월부터 지속된 블레어 주변의 ‘메모 유출 시리즈’도 집권세력에 대한 불신을 부추겼다. 앤더슨은 그의 칼럼을 이렇게 끝맺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때만 해도 블레어는 영국의 모든 정치 상황을 장악하고 있었다. 야당은 언론에 등장해 최소한의 관심이라도 보여달라고 유권자들에게 호소했다. 그러나 이제 블레어총리가 그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눈물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다. 6개월전만해도 내년 선거에서 보수당이 승리한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박제균기자>phark@donga.com

최근 불레어 총리 주변에서 유출된 메모

유출일자내 용
7월 27일“솔직히 말해 정치적으로 유로화를 채택해야 할 당위성은 압도적이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아직 시기가 적당하지 않다.”(블레어)

“유로화 채택 반대론자들은 영국의 주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강조해 많은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블레어 측근 필립 굴드)

7월 23일“친척이 지난 밤 꾼 악몽인데 유권자에게 버림받은 블레어 부부가 우리 집에 들어와 살게 됐다.”(필립 굴드)
7월 19일“나와 우리 당이 영국인들의 내밀한 본성에 접근하지 못하는 대목이 있다.”(블레어)
7월 17일“노동당의 새로운 기치는 빛이 바랬다. 정부는 표류하고 있다.”(필립 굴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