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IT산업 새 리더, 중국-인도계가 뜬다

  • 입력 2000년 7월 4일 19시 04분


《중국계와 인도계가 미국 역사상 최장기 호황을 주도하고 있는 IT(정보기술)산업 분야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미 캘리포니아 공공정책연구소의 지난해 조사결과에 따르면 IT산업의 중심지인 실리콘밸리에서 중국계와 인도계가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는 기업 수는 1998년말 현재 2775개로 실리콘밸리 전체 기업의 24%나 된다.

물론 이들 이민세력은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시스코 시스템스의 존 챔버스, 아마존의 제프리 베조스 등 미 ‘본토 군단’에 맞설 만한 수준은 아직 못된다. 하지만 몇 년 이내에 본토인의 입지를 위협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 보고서를 정리한 애너리 사크세니언 UC 버클리대 교수는 “실리콘밸리의 기반은 ‘IC’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집적회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인(Indian)과 중국인(Chinese)의 머리글자”라면서 이들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 최대의 소프트웨어 기업이 MS라면 기업용 소프트웨어 분야의 최고 기업은 뉴욕 롱아일랜드에 위치한 컴퓨터 어소시에이츠사. 창업주는 중국계 이민 출신인 찰스 왕 회장이다. 데이터 관리 등 기업의 정보화를 지원하는 이 기업이 개발 판매하는 소프트웨어만도 500종에 이르며 미국의 기업 90% 이상이 이 회사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왕회장은 중국 상하이 출신으로 공산화 후 핍박을 받게 된 판사 출신 아버지를 따라 1952년 뉴욕으로 건너왔다. 부친은 대학에 자리를 얻었지만 생활이 어려워 그는 학교를 다닐 때 점심을 거의 걸렀다. 뉴욕 퀸스대를 고학으로 졸업한 그는 프로그래머 모집 신문광고를 보고 IT업계에 뛰어들었다. 30세 때 4명의 직원으로 창업한 그는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발휘해 70개사를 인수합병, 현재 직원수가 2만명에 이른다. 99년 연봉은 6억5000만달러나 됐다.

세계 최대 인터넷 검색업체인 야후의 설립자 제리 양은 중국 대만 태생으로 중국계를 대표하는 CEO다.

제리 양은 2세 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정착해 실리콘밸리의 중심지 새너제이에서 성장했다. 그는 94년 미국 스탠퍼드대 전기공학 박사과정 재학 중 연구실 동료인 데이비드 필로와 함께 야후 검색엔진을 개발, 벤처기업가를 꿈꾸는 이들의 우상이 됐다.

인도 출신 CEO 가운데 선두주자는 K. B. 찬들러세칼 회장. ‘엑소더스 커뮤니케이션스’의 창업자로 이 회사는 전자상거래를 위한 서버관리 등을 위탁관리해 준다. 그는 90년에 미국으로 이민, 무일푼으로 시작해 연간 매출액 2억달러가 넘는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찬들러세칼의 성공 뒤에는 자금과 아이디어를 제공한 대부가 있었다. 실리콘밸리의 인도계 지원 벤처캐피털인 ‘인더스 엔터프러너스’의 캉왈 레키 회장이다. 찬들러세칼은 창업 후 1년이 지나며 사업자금이 바닥나자 아내와 3명의 자녀를 데리고 인도로 돌아갈 생각을 하다 동족인 레키 회장을 찾았다. 60년대 미국에 건너와 IT업계에서 거액의 부를 쌓은 레키 회장은 레키에게 20만달러를 투자하고 경영자문역을 맡아 기사회생의 길을 열어주었다.

중국계와 인도계가 미국 IT산업계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갖게 된 데에는 이같은 이민사회의 결속과 응집력이 작용했다.

레키 회장이 찬들러세칼에게 거금을 대준 것은 미국 산업계에서 이민세력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본과 경영노하우를 공유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30여년의 오랜 미국 생활에서 체득했기 때문. 제리 양도 한국계 일본인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의 자본투자와 경영자문을 받지 않았다면 야후를 이 정도로 키울 수 없었을 것이다.

중국계와 인도계를 포함한 이민세력이 차지하는 미국 IT산업 내 비중은 미국 IT산업이 고속성장을 할수록 더욱 커질 것이 틀림없다. 전문 고급인력이 달려 외부 수혈이 불가피하기 때문. 미 하원 이민소위원회는 최근 실리콘밸리의 요구를 받아들여 외국 전문기술인력의 취업을 제한하고 있는 H-1B비자 쿼터제를 2001∼2003 회계연도에는 철폐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신치영기자>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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