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통신, 한국전때 '미군의 양민 대량학살사건' 특집기사

  • 입력 1999년 9월 29일 19시 49분


“이제야 응어리가 풀리려나….”

미국 AP통신이 6·25전쟁 당시 미군이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에서 피란민을 대량 학살한 ‘노근리 사건’의 진상을 특집기사로 다룬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유족들은 한결같이 “이제 한을 풀게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AP통신은 미군이 50년 7월25∼29일 노근리에서 피란민을 학살한 사건에 관한 특집기사를 30일 오전2시(한국시간) 송고했다.

AP통신은 이에 앞서 기사전송 예고를 통해 “사건 당시 미군 관계자와 생존자들의 증언, 최근 비밀해제된 미군 문서 2건을 토대로 당시 미군이 피란민을 ‘적군’처럼 취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전했다.

‘노근리 사건’은 6·25전쟁 당시 피란길에 오른 영동군 영동읍 임계리와 주곡리 주민 500여명이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 철로 굴다리에 이르렀을 때 미군들이 무차별 총격을 가해 120여명이 숨진 양민학살사건이지만 그동안 진상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29일 오후 2시경 사건현장인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굴다리.

당시 부모 등과 함께 현장에 있었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았다는 영동군의회 전의원 양해찬(梁海燦·58·임계리)씨는 굴다리 주변의 탄흔(彈痕)을 취재진에게 설명한 뒤 물끄러미 하늘만 쳐다보았다. 그의 형과 동생, 할머니가 숨지고 누나는 실명했으며 어머니도 부상했다는 것.

또 당시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잃었다는 서정구씨(77)는 “당시 미군들은 굴다리에서 한차례 주민들을 학살한 뒤 총격을 피해 달아나는 사람들에게 또다시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며 “이제 곧 진상이 밝혀진다니 가슴의 응어리가 좀 풀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동〓지명훈기자〉mhjee@donga.com

▼정은용대책위원장 "당국 무관심…탄환흔적 최근 은폐시도"▼“그동안 미국은 물론 우리 정부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미국 통신사의 추적으로 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다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노근리 미군 양민학살사건 대책위원회’ 위원장 정은용(鄭殷溶·76·대전 서구 가수원동)씨는 29일 “이 기회에 꼭 미국의 사과와 손해배상을 받아내고 현장에 위령비도 건립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50년 7월26일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사건현장에서 어린 두 자녀를 잃었으며 부인 박선용(朴善用·74)씨도 부상했다”고 당시의 악몽을 되새겼다.

그는 “당시 영동읍 주곡리와 임계리 주민 500여명이 미군의 권유로 피란길에 올라 노근리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미군 비행기에서 기총사격을 해 120여명이 숨졌다”고 증언했다.

정씨는 94년 유가족 130여명으로 대책위를 구성하고 그해 7월과 11월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미국 상하 양원에 진상조사와 사과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보냈으나 회신조차 받지 못했다. 정씨는 “대책위의 진상조사 요구가 계속되자 당국이 사건현장인 노근리 경부선 터널에 있는 탄환흔적을 시멘트로 메우고 페인트까지 칠해 진상은폐를 시도했다”고 말했다.

〈대전〓이기진기자〉 doyoce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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